“두려움의 정체”
닉 부이치치의 아버지 보리스 부이치치가 책을 썼더군요,
[완전하지 않아도 충분히 완벽한]이라는 제목의 책인데 한 구절이 마음에 깊이 와 닿았습니다. 첫 아들로 태어난 닉이 팔과 다리가 없는 아이로 태어난 알고 그 현실을 받아들이기 참 힘들었던 때죠.
“집으로 차를 몰고 오는 내내 거대한 슬픔의 파도가 계속 내 마음을 강하게 때렸다.
그 슬픔은 장애아가 태어났다는 것 때문이 아니라 기대했던 아이가 태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에서 비롯된 감정이었다. 내 불신과 절망은 이내 활활 타오르는 분노로 발전했다. ‘하나님, 저희에게 왜 이러시나요? 도대체 왜요?“
오늘 아침 ‘두려움의 정체’라는 제목으로 생각을 하게 됩니다.
결국 두려움이란 내가 기대했던 일이 일어나지 않을 때 경험하는 감정이라는 것이죠.
그러고 보니 두려움이 우리의 삶에서 떠나지 않는 이유가 분명합니다.
마음대로 원하는 대로 되는 일이 없기 때문은 아닐까요?
두려움이 찾아오는 순간 우리는 적나라한 우리의 모습을 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생각했던 우리의 모습이 그렇게 비참할 수 있는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경험했던 제자들이 배를 타고 갈릴리를 건너다 만난 폭풍속에서 주님을 보고서도 ‘유령’이라고 생각했던 것을 보면 참 신기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생생하게 경험했던 기적과 예수님의 능력이 거친 파도앞에서 그렇게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이 말입니다.

두려움의 정체!
제자들이 바다에서 파도를 만났다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 파도가운데서 주님을 알아보지 못했다는 말입니다.
제자들이 주님을 ‘보지 못한 것’이 아니라, 그들 눈앞에 보이는 주님을 ‘유령’으로 생각했다는 것이 문제가 아닐까요?
두려움 속에 찾아오신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니 두려워 말아라!”
제가 영어를 잘 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영어로 성경본문을 볼 때면 뭔가 더 확실하게 와 닿는 느낌이 들 때가 종종 있습니다. 바로 이 부분을 NIV 성경으로 묵상 할 때 였죠.
“take courage! It is I."
두려움 가운데 필요한 것은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용기’를 내는 것이죠.
바로 옆에서 속삭이시는 주님이 있기 때문입니다.
It is I !
우리 주님을 가장 생생하게 만나는 곳은 바로 거친 파도 가운데서가 아닐까요?
그리고 그 주님을 가장 강렬하게 붙잡아야 하는 순간이 있다면, 우리에게 엄습하고 있는 두려움 가운데서가 아닐까요?
우리 인생의 거친 파도는 어찌보면 간단한 일들입니다.
우리 삶에 기대하지 않았던 일들, 예기치 못했던 일들이 일어나는 순간들이죠.
그런데 그 간단한 일들 가운데 ‘주님’이 없으면 우리는 외롭고 무섭습니다.
주님을 보아도 주님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죠.
두려움의 정체를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두려움 속에 찾아오신 주님을 알아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어두움의 터널 그렇게 길지 않습니다.
두려움의 정체도 그렇게 길지 않습니다.
가장 큰 두려움은 내가 붙잡고 살아가는 주님에 대한 기대가 끝나는 것입니다.
(김병삼 목사님 페이스북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