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신앙은 ‘과거’에 일어난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것이 아니다. 십자가 앞에서 완전히 좌절하고 달아난 제자들이 그렇게 담대하게 예수님을 선포한 것은 살아 있는 예수님을 ‘현재적’으로 체험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예수님이 부활하여 현재 살아있다는 체험을 했다. 현재 살아서 역사하고, 지배하는 그리스도를 만났다.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 미문 앞에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적을 행했다. 그의 놀라운 외침을 들어보라.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행 3:6)
예수님의 이름은 부적이 아니다. 죽은 예수님의 이름이 기적을 일으킬 수 없다. 예수님의 이름은 그이 현존이며 그의 현재적 능력이다. 예수님의 부활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는 현재 살아 있다는 말이다. 부활신앙은 예수님이 ‘지금’ 생생히 살아서 나의 삶 속에 있고, 우리가 숨 쉬는 사회 안에 있고, 고통받고 소외된 자들 옆에 있다는 고백이다. 그 살아 있는 그리스도를 내가 만날 때 부활신앙은 생기를 얻는다.
신앙은 ‘죽은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아니다. 신앙은 살아서 역사하는 그리스도를 만나는 사건이다. 부활의 현재적 힘을 체험하지 못한 신앙은 공허한 의무감일 수밖에 없다. 오늘날 매년 드리는 부활절 예배가 관례행사가 되고 말았다. 현대의 교회가 부활신앙을 잃어버리고, 죽은 예수님을 기억하고 회상하는 장소가 되어서는 안 된다. 교회는 예수님의 유품을 모아둔 기념관이 아니다.
김동건 교수, 「김동건의 신학이야기」, p 335-3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