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유명한 청소년 사역자 한 사람의 스캔들이 폭로되었습니다.
이젠 충격도 되지 않을 정도이지만 마음이 무척 힘듭니다.
이제야말로 사람을 의지하여 주 예수님을 믿는데서 속히 벗어나야 할 때입니다.
교회 공동체는 너무나 중요하며 목회자를 마땅히 존경해야 하지만 목회자나 설교자, 은사자를 주목하는 일은 대단히 위험한 일입니다.
복음은 누구나 주님과 하나되어, 주님과 동행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 안에 오셔서 우리의 생명이 되셨습니다
요 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
골 3:4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
요일 5:12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
이처럼 우리가 예수님의 생명으로 살게 되었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것이 힘들다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힘들지 않습니다. 진정한 구원의 길이요 참 승리의 삶입니다.
누구나 특효약, 좋은 병원, 맛있는 음식점을 안다면 주위 사람들에게 추천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오죽 하시겠습니까? 조금이라도 우리에게 해롭고 손해될 가능성이 있다면 우리에게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하고 명령하셨겠습니까?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지고 주님을 따르는 길이 우리에게 정말 복된 길임이 분명하니 명령하신 것입니다.
정작 힘든 것은 자아가 죽지 않고 자아를 추구하며 사는 것입니다.
결혼하고 불행하게 사는 이유는 “나 행복하게 해 줘!” 하는 마음 때문입니다.
목사도 설교 잘하려고 하는 마음 때문에 설교를 망칩니다.
부자되려는 마음 때문에 사업을 망칩니다.
학생이 좋은 성적을 내려고 하니 공부가 힘든 것입니다.
운동 선수가 몸에 힘이 들어가니 결과가 좋지 않은 것입니다.
자아가 죽지 않은 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니 무거운 짐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도 우리는 여전히 질그릇입니다.
그것이 우리를 당황하게 만들고 좌절하게도 낙심하게도 만듭니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가 질그릇임에 있지 않습니다.
보배이신 주님이 우리 안에 계신 것을 믿지 못하기에 문제인 것입니다.
우리가 여전히 질그릇이라 때때로 육신에 휘둘리며, 좌절감에 빠질 때가 있지만 그 때마다 우리 자신이 이미 장례식을 치르고 산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롬 6:4)
우리가 “나는 죽었습니다” 하고 시인하면 주님은 반드시 죽음으로 얻은 생명이 무엇인지 알게 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질그릇 같은 우리 안에 보배이신 주님을 보내신 것은 거룩한 삶에 대한 최종 승리를 이미 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점진적으로 육신을 이겨 가다가 하나님의 생명에 다다르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종교가 이렇게 가르치지만 이론일 뿐 불가능한 일입니다.
복음은 주님의 생명으로 사는 은혜를 먼저 주셨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을 이식받은 사람입니다. (빌 1:8)
이 말은 우리는 승리를 보장받고 경건하게 산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이 놀라운 복음을 믿고 감사하고 찬양할 뿐입니다.
우리가 육신에 무너질 때는 이 믿음의 고백과 감사와 찬양이 그쳤을 때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구약 성경에 나오는 아브라함, 요셉, 다윗과 엘리야 같은 위인들을 부러워하면서 그들처럼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합니다.
그러나 카일 아이들먼은 [not a fan](팬인가, 제자인가)에서 우리가 천국에 가면 우리가 다윗과 엘리야와 모세에게 묻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우리를 부러워하며 질문을 쏟아 낼 것이라고 했습니다.
"말해 봐요. 성령이 안에 거하는 느낌은 어땠어요? 정말로 당신이 약할 때 힘을 주시던가요?” "하나님 안에 거하시는 느낌은 어땠나요? 성령이 슬플 때는 기쁨을 주고 죄의 구렁텅이에서 허덕일 때는 능력을 주셨으니 정말 좋았겠어요”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새 생명의 은혜가 얼마나 놀라운지 알아야 할 것입니다.
장미에게 꽃을 피라고 말을 하지 않아도 장미는 꽃을 피웁니다.
강아지에게 짖으라고 말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짖어댑니다.
독수리에게 날으라고 말하지 않아도 하늘 높이 비상하여 날아 오릅니다.
어떤 생명이 어떤 것을 살아 낸다는 것은 너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생명 안에는 생명의 본능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24 시간 주님을 바라보려는 것이 바로 이 은혜를 누리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입니다.
그 때 예수님의 생명으로 살게 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오늘도 간절히 기도하게 됩니다.
"육신의 죄성으로 인하여 괴로워하는 많은 성도들에게 몸도 거룩하게 되는 주님의 날이 속히 임하게 하소서.
그 믿음과 갈망을 잃지 않게 하시고 오직 새 생명되신 주 예수님을 의지하여 육신의 종노릇하지 않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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