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대학교 불교학 박사이자 40년간 승려생활을 한 김진열(63·아산예은교회)씨가 최근 학창시절 믿었던 기독교 신앙을 회복하고 제2의 삶을 살고 있다.
1970년 초 대학입시에 실패한 김씨는 목회자의 꿈을 접고 불교서적을 읽기 시작했다. 불교학 박사 학위도 받았다. 하지만 허무한 마음은 채워지지 않았다. 악몽에 시달렸고 삶을 포기하려는 생각도 했었다. 다행히 뒤늦게 다시 찾은 신앙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며 평안을 되찾았다.
지난 19일 충남 아산시 시민로 아산예은교회(임헌준 목사)에서 만난 김씨는 “3년 전 힘든 시기에 어린시절 믿었던 기독교에 대해 다시 관심을 갖다가 지난 1월 17일부터 본격적으로 교회에 출석하고 있다”며 “지난달 20일 세례확인예식도 가졌다. 앞으로 신학교에 입학해 더 깊이 기독교신학을 연구하고 복음을 전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의 인생은 한편의 드라마를 연상케 한다. 22세까지 성경공부와 교회생활을 했고, 이후 61세까지 불교적 세계관과 가치관으로 살았다. 5세 때 부모를 여읜 그는 형수를 따라 교회에 다녔다. 구역예배와 통신으로 성경공부를 하고 세례도 받았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믿음이 더 이상 자라지 않았던 것이다. 게다가 대학에 떨어지자 목회자가 되겠다는 꿈도 사라졌다.
‘교회 다니는 내가 왜 대학을 낙방해? 하나님도 무심하시지. 인생은 어디로 가는 것인가.’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하나님을 원망하고 사주와 관상 책을 구입했다. 불교 책들이 눈에 들어왔다. 1977년 절에 들어갔고 81년 승려가 됐다.
같은 해 동국대 불교학과에 입학한 김씨는 대한불교 조계종 종립 동국대 종비생 석림회 장학생이었다. 92년 불교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법명과 호가 보현(普賢)인 그의 박사학위 논문 제목은 대승불교 후기 경전인 ‘능엄경 연구’다.
김씨는 동국대와 중앙승가대에서 9년간 강의했다. 불교계에서 촉망받는 학자이고 승려였다. ‘종교학개론’ ‘불교사회학’ ‘교단발달사’ ‘율전개설’ 등을 가르쳤다. 20년간 수원과 천안에서 ‘감로향사’라는 작은 암자를 운영하기도 했다. 교회 비판도 했다.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고 기독교 성시화운동을 비판하며 불교의 우월성을 주장하기도 했다.
그런 그에게 기독교 신앙을 갖게 되는 계기가 찾아왔다. “3년 전, 꿈속에서 거칠게 생긴 두 사람이 문을 열고 들어와 저승에서 왔다며 저더러 가자고 끌고 가려 했습니다. 너무 놀라 잠을 깬 뒤 뜬눈으로 아침을 맞곤 했지요. 낮에도 전화나 컴퓨터가 이유 없이 켜지는 등 이상한 일에 연일 시달리니 삶이 힘들었습니다.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웠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를 버리시지 않으셨다. 죽음의 문턱에서 어릴 때 읽은 성경구절이 문득 생각났다. 로마서 10장 9∼10절이 눈앞에 펼쳐졌다.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그는 “예수님을 만나 어느 때보다 마음의 평안을 누리고 있다”며 기독교에 귀의한 소감을 밝혔다. 불교세계에 대한 체험을 묻자, 그는 “40년간 승려생활을 하고 수행을 했지만 진리는 없고 구원의 길도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늦은 나이지만 기독교에 귀의한 것을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님이 늘 보호해 주실 것으로 믿는다”고 환히 웃었다.
그는 다음 달 간증집 ‘내치신 부처님, 안아주신 예수님-내게 입 맞추기를 원하니’(더나은생각)라는 제목의 책을 발간한다.
임헌준 목사는 “나중에 알고 보니 김 박사와 나는 동국대 불교학과 동창”이라며 “김 박사가 교회에 나오겠다고 해 정말 기뻤다. 정통 불교대학에서 불교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승려가 기독교에 귀의한 일은 처음 있는 일이다. 김 박사가 한국교회에서 귀한 활동을 해 주길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산=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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