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주 전 일입니다.
예배를 시작하기 전 준비한 말씀을 가지고 어머니 기도실에서 기도할 때였죠.
지난 해 말 폭발 사고로 전신에 화상을 입은 교인을 위해 헌금을 해야겠다는 마음을 주셔서, ‘한 셈치고’ 헌금을 제안했습니다.
오늘 하루 가족들 식사에서 ‘탕수육’ 먹은 셈 치고, 청년들은 예배마치고 커피 마신 셈치고 그렇게 헌금 해보자는 것이었습니다.
예배를 마치고 나가는데 중년의 부부가 눈물을 흘리며 저에게 다가왔습니다. 처음 보는 사람들이었죠.
대뜸 그 화상 입은 가장과 가족을 위해 치료비 전액을 헌금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지난해 11월 성악을 전공하고 찬양하는 것을 그렇게 좋아하던 아들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후 ‘생명보험’으로 받은 돈이 있다고, 그 아들의 목숨 값으로 받은 돈을 어떻게 써야할지 고민하며 기도하다, 다른 생명을 살리는데 사용해야겠다는 강한 마음을 주셨다고. . .
아직도 그 아들이 너무 보고 싶어 엄마는 매일 눈물로 지낸다고, 경상도에서 살던 가족이 그 아들 잊어보려고 교회 근처까지 이사를 왔노라고. . .
어제 말씀은 묘하게도 ‘나인성 과부’의 이야기였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잃고 장례 행렬을 따라가던 과부를 예수님이 만나주신 사건이었죠.
어제 새벽에도 말씀을 붙들고 묵상하는데 눈물이 나더군요.
나인성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며 ‘울지 말라’고 하신 말씀이 꼭 그 어머니를 위해 주시는 말씀 같았기 때문입니다.
참 말씀이 놀랍더군요.
가버나움에서 출발해 나인성을 향해 가고 있던 주님의 행렬이, 나인성에서 아들이 죽기 전부터 시작한 발걸음 이었다는 것이 말입니다.
슬픔이 시작되기 전 이미 위로하시기 위해 여정을 시작하신 우리 주님이 말입니다.
참 말씀이 놀랍더군요.
많은 무리들이 주님을 따르고 있었고, 아들이 살아난 기적을 경험한 사람은 ‘하나’였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 소식을 듣고 ‘하나님께서 돌아오셔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구원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참 말씀이 놀랍더군요.
그 놀라운 일의 소문이 퍼져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그 소문을 ‘거룩한 소문’이라고 말하고 싶구요.
그 소문으로 인해 사람들이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알기 시작하며 위로하시는 주님을 기대하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그 아들의 생명 보험으로 치러진 목숨 값이 또 누구의 생명과 가정을 살리고,
또 그 가정이 누군가의 생명을 살리는 기적이 계속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담임목사인 저에게 주신 마음이 있습니다. ‘한 셈치고’ 헌금을 계속해야겠다고, 참 이기적인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한 셈치고’ 누군가를 생각할 수 있는 마음, 우리를 불쌍히 여기신 주님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기회를 주시는 것이 참으로 놀라운 기적이라고 말이죠.
- 출처 : 김병삼 목사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