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말이 있습니다. 다 듣기도 전에 대답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다. 꼭 끝까지 다 읽어보시고 판단하시길 바랍니다. 자신이 싫어하는 것과 사실은 명백히 구분되어야 합니다. 의사가 자신이 싫어하는 수술법이라고 해서 틀린 것이 아닌것처럼말입니다.
한가지 질문하고 싶습니다. 당신이 죽으면 어디로 갈까요. 오늘 세상이 끝난다면 천국가실 수 있겠습니까.
당신은 죄인입니다. 그것은 굳이 물어서 확인해 보지 않아도 압니다. 자신의 인생을 누군가 DVD로 만들어 공원에서 상영하도록 허락한다면 당신은 절대 그곳에 가지 않을 것입니다. 혹자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나는 살면서 그렇게 큰 죄를 짓지 않았는데요? 선에 대한 판단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히틀러와 넬슨 만델라의 선의 기준이 다릅니다. 링컨과 세종대왕의 선에 대한 기준은 다릅니다. (어떤 나라에서는 도둑혼도 합법이고 일부다처제가 합법입니다. 기독교신자를 물리적 타격을 하는 것도 합법입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죄에 대한 기준선을 만들어놓고 그것을 넘지 않으면 죄가 아니라고 합니다. 죄의 경중을 자신이 판단하는 것입니다. 자기 입맛에 맞는 신을 만드는 것이죠. 하나님은 죄에 대해서 진노합니다. 당신의 친지를 해한 살인자가 있습니다. 그가 법정에 섰을때 판사가 나는 자비가 많은 판사이기에 죄인을 석방하는 바입니다. 라고 말한다면 당신은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죄에 대해서 용인하는 더 부패한 판사가 여기 있다고 신문사에 고발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죄를 용인하지 않습니다. 죄의 댓가는 지옥입니다. 15m 이상의 파도가 몰아치는 쓰나미 영상을 본 적이 있습니까. 사람들은 그 앞에서 자신을 구하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죠?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저 가만히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죄를 지은 인간의 상태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하신 일은 자신의 아들이 죽게 하신 일입니다. 우크라이나에 아주 유명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러시아 왕과 노예가 시베리아에서 개썰매를 타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출발하는데 늑대 무리가 그들을 따라 왔습니다. 늑대는 보통개와 크기가 다릅니다. 머리가 사람의 배이상 클수 있습니다. 그들은 깨달았습니다. 이 늑대 무리의 추격을 뿌리치지 못하고 죽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그래서 그종 스스로 개썰매 밖으로 몸 던집니다. 늑대 그 종 잡아먹고 왕은 목숨 건졌습니다. 누군가가 말합니다. 그것은 십자가를 연상시키는 장면이라고. 또 다른 사람이 말했습니다.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이 십자가를 연상시키는 장면이었다면 왕이 그 노예를 살리기 위해 개썰매 밖으로 자신을 던졌을 것입니다.
혹자는 2000년 전 죽은 예수가 어떻게 지금 살고 있는 내 죄를 용서해주느냐 의심하는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자식이 태어나서 기른다면 우리는 자식이 잘못을 저질렀다고 할지라도 진정으로 용서를 구할때 따뜻하게 안아줄것이고 지금 바로 죄를 짓고 용서를 구해도 받아줄것이고 앞으로 어떤 잘못을 해서 부모앞에 와서 용서를 구한다고 할지라도 부모는 자식을 용서할겁니다. 우리의 용서받음은 2000년전 피로 세워진 한 언약입니다.
중요한 것은 인간은 소망이 없습니다. 죄를 판단할 변하지 않는 기준도 없습니다. (사람은 자신의 죄나 자신의 친구나 부모나 자식앞에서 자신의 이해관계가 걸려있는 사람들 앞에서 관대해지기도 합니다.) 모든 인간은 사형수일뿐입니다. 예수의 죽음은 우리가 기대하지 않은 사랑입니다. 사실 대부분 사람들이 예수가 나를 위해 죽은 것이 고맙지도 않습니다. 자신이 볼 때 자신은 지옥갈 죄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사실이 역사적 사료로 남은 사실이고 당시 그것을 같은 장소에서 목격한 증인은 500명이 넘었습니다. 법정에서도 2인이상의 증인이 있으면 증언을 매우 유효하게 생각합니다. 글을 기록한 당시 부활한 예수를 목격한 사람들이 살아있을때였습니다. 분명히 알아야할 것은 2000년이 지난 지금 우리에게 유효한 증언이여야 하는 것이 아니라 당시 사람들에게 믿어졌어야 했다는 것입니다.
500명의 증인들을 오늘날 법정에 출석시켜 각사람마다 15분씩 반대심문을 한다고 해봅시다. 쉬지 않고 종일토록 심문하면 월요일 아침에 시작해 금요일 저녁때까지 그들의 증언을 들어야 합니다 .연이어129시간 동안 목격자의 증언을 들은 후에도 믿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요.
하버드 대학의 법학 교수 시몬 그린리프는 예수의 죽음과 부활에 대해 면밀히 조사하며 부활의 증거로 다음과 같은 8가지를 말했습니다.
1. 로마 봉인 : 로마제국의 봉인을 끊는 것은 자살행위(마 27:62-66)- 수제자 베드로 계집종 앞에서 예수를 부인했다는 사실 염두해야함.
2. 빈 무덤 : 유대교는 사도들의 교리를 막으려고 예수님의 시체를 찾았지만, 결국 찾지 못함
3. 큰 돌(1.3~1.8톤) : 돌무덤은 경사져 있어서, 돌이 한 번 굴러가 입구를 막으면 다시 열기 힘들었다. (돌이 이동하려면 장정 20명이 필요함.)
4. 파수꾼 :
(1) 유대인 성전 수비대(총 270명, 조별 10-27명씩, 경비 중 잠 또는 임무 실패 시 화형)
(2) 로마 경비대(16명이 한 조, 4명이 경비 서는 동안 나머지는 반원으로 둘러서 잠)
5. 정돈된 수건과 아마포 :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사용하셨던 수건과 아마포를 개어놓으셨음.
6. 다양한 목격자 : 성경은 부활하신 예수님이 다양한 사람들에게 나타나셨음을 증거(고전 15:6-8)
7. 첫 목격자들이 여자들 : 당시 사회에서는 여자들이 법정에서 증인으로 설 수 없었음 – 실제 이것을 그대로 기록하므로 후에 이단들에게 조롱을 받았다. 대중을 설득할 목적이었다면 다른 남성 제자들이 보았다고 기록하는 것이 더 합리적일 것.
8. 제자들의 삶의 변화 :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갔던 제자들이 이후에 모두 목숨을 걸고 부활을 증언 – 제자들이 예수부활을 전하며 얻은 삶. 사회적 멸시. 십자가형. 돌팔매형. 창으로 찔림. 태형. 투기장행 등등...
예수께서 부활하신 그 날 새벽 예루살렘의 무덤에서 사라진 예수의 몸(시체)의 행방에 대하여는,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게 한 교활한 대제사장들이 음모하여 "제자들이 도적질해 갔다"는 거짓말의 조작이외는 아무런 대책(시체의 수색)도 없었다(마 28:11-15). 그러므로 예수(시체)의 실종은 예수의 부활을 오히려 변증하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역설적인 택일적 가정(假定)을 일으킨다. 그 하나는, 예수의 시체(만일 기절하였다가 소생했다해도 빈사상태인 예수의 몸)가 백 근의 향료를 겹겹이 넣고 꽁꽁 감아놓은 수의에 쌓인 채로, 무덤을 막은 큰 바위를 밀어내고 로마 군병(파수꾼)들의 삼엄한 감시망을 뚫고(또는 제압하고) 도망쳤다고 하는 억지의 가정을 불러오고, 또 하나는 당시 예수의 처참한 최후를 목격한 제자들 대부분이 절망하여 뿔뿔이 흩어져서 일신의 안위에 전전긍긍했던 때에, 일부 만용을 부리는 제자들이 무장한 여러 명의 로마 경비병들을 어떤 방법으로 제압하거나, 그들이 태만하여 잠시 잠자는 사이에 무덤을 봉한 큰 바위를 밀어 낸 후 예수의 시체를 도적질하여 그들의 인력(人力)으로 예수의 시체를 들고 도보(徒步)로 예수살렘을 벗어난 먼 곳에 옮겨서, 아무도 찾을 수 없도록 깊이 감추었다는 가정이다. 이 경우 어떤 택일적인 대안도 불가능을 의미할 뿐이다. 그러므로 부활이외의 다른 정답은 없다는 것이 지성인의 합리적인 판단일것이다.
예수의 의학적 사망상태였던 것은 확실한 사실입니다. 집행관 필라투스가 백부장에게 물어 그의 죽음을 명백히 확인했고 그 이전에 플레그럼이라는 유리조각과 쇠구슬이 달린 채찍으로 으로 살점이 뜯거져 나가 창자의 일부가 보이게 될 정도(대부분 죄수들은 십자가에 달리기도 전에 그 태형으로 인해 즉사)의 극한 고문은 저혈량성 쇼크상태로 이어졌고, 제자중 유일하게 사형 집행 현장에 있었던 요한은 로마병사가 창으로 옆구리를 찔렀을때 물과 피가 분리되어 쏟아지는 것까지 보았습니다. 그가 어부출신인 것을 생각하면 이것이 심장이 파열되어 나타나는 의학적 지식을 가진것이 아니라 그가 본 그대로를 기술한 것입니다.
또한 부활도 확실한 역사적 사실입니다. 의학적으로 사망에 이른 예수가 부활했다는 것외에 인과관계를 설명할 다른 합리적 가능성은 없습니다. 성경에 믿을 수 없을 만큼 놀라운 기적들이 예수님을 통해 행해졌습니다. 이것이 기록된 것도 당시 다수의 증인들을 통해 확증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유대인 탈무드에는 그를 마술사라고 불렀습니다. 일어난 기적에 대해서 부정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만약 이런 불가능한 일을 행할 수 있는 모든 과학의 법칙을 뛰어넘는 분이 있다면 그분이 정말 창조자가 아니겠습니까.
자신이 죽으면 소멸되는 것이 아니라 좋은곳으로 갈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신의 존재는 인정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모순입니다. 자기가 지옥 갈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 것이 자기의입니다. 자기가 보기에는 죄인이 아닌 것이죠. 누가 주인입니까. 자기가 주인이고 신입니다. 내 판단에 이렇게 말하는 하나님이 틀렸다는 것이죠. 내 판단에 이렇게 행하시는 하나남이 틀렸다는 것이죠.
꼭 모든 것을 알아야만 상대를 신뢰 하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신뢰하는 것은 내가 그 사람의 행동을 다 이해하기 때문이 아니라 사랑한다는 전제가 먼저 있기 때문입니다.
정하실 때가 왔습니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자신이 살아왔던 삶의 방향에 대해서 진지하게 재고해보시겠습니까. 아니면 자신이 주인이 되어 혹은 사람들이 예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어리석어 보인다고 하는 판단에 자신을 내어 맡기고 허무한 삶을 지속하시겠습니까.
부디 이글을 읽고 자신이 지옥갈 수 밖에 없는 죄인임을 깨닫고 죄를 회개하고 내가 주인되었던 삶을 회개하고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는 삶을 사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