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박일민 - 칼빈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출처 : 교회와 신앙
4. 삼위일체 하나님
1) 삼위일체의 중요성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은 삼위일체 하나님이다. 삼위일체란 하나님이 한 분이면서도 성부, 성자, 성령이라는 세 인격으로 계심을 말한다. 하나님이 삼위일체이심에 대한 믿음은 기독교회의 핵심적인 요소이다. 사도신경의 대부분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고백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삼위일체가 이해하기 어려움에도 기독교 신앙의 핵심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성경이 분명하게 말하고 있고, 또 성경전체의 중심 주제인 구속진리의 열쇠가 되기 때문이다. 삼위일체를 부인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하나님 되심을 부정하는 것이요, 따라서 그리스도를 통한 구속을 부정하는 것이며, 동시에 성령이 하나님 되심도 부정하여, 우리 속에서 실제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성령의 구속적용 사실을 부인하는 것이다.
2) 삼위일체의 증거
성경에 삼위일체라는 단어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을 종합해 보면 삼위일체라는 결론에 이를 수밖에 없다. 성경은 만물을 창조하시고 성자를 낳으신 성부를 하나님이라고 하였다(고전 8:6) 태초부터 성부와 함께 계시던 성자도 하나님이라고 하였다(요 1:1).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속였던 성령도 하나님이라고 하였다(행 5:3, 4). 삼위께서 각각 하신 사역을 보아도 하나님으로서의 전지전능하심과 편재하심 등의 속성이 나타나고 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신을 복수명사를 사용하여 "우리"(창 1:26, 3:22)라고 하셨다. 세례를 베풀 때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마 28:19)고 하였다. 왜냐하면 삼위가 각각 하나님이시고, 그 영광과 권능에서 서로 동등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하나님은 복되시고 홀로 한 분이신 능하신 자"(딤전 6:15)라고 하였고, "나 외에는 다른 신이 없느니라"(신 4:35)고 하였다. 이러한 내용을 한 마디로 설명하는 말이 삼위일체이다.
3) 삼위일체 교리의 완성
삼위일체라는 용어는 초대교회의 교부들에 의해서 생겨났다. 한 분이신 하나님을 맨 처음 삼위로 표현한 분은 주후 2세기 때 교회지도자 중 한 사람이었던 데오빌루스이었다. 그 후 220~240년 사이에 세상을 떠난 것으로 알려진 터틀리아누스가 삼위일체라는 말을 처음 사용하였다. 그러나 삼위일체에 대한 일부 사람들의 오해로 인하여 교회에 혼란이 일어나자 이를 바로 잡기 위한 전체교회의 회의가 소집되었다. 이 회의는 주후 325년에 니케아라는 도시에서 있었다. 이 회의는 삼위일체에 대한 정확한 설명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 자세한 내용은 우리나라에서는 자주 사용하지 않고 있는 니케아 신경으로 발표가 되었다. 이 회의에서 크게 공헌을 했던 사람은 알렉산드리아 교회의 감독이었던 아다나시우스(293~373)이었다.
4) 삼위의 구분
하나님은 오직 한 분이심에도 삼위로 존재하시기 때문에, 필요에 따라서는 동시에 각기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시기도 한다. 성자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던 요단강이 그 좋은 예이다. 성부께서는 하늘에서 들리는 소리로 임하시고, 성자께서는 물에서 나오는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시고, 성령께서는 비둘기 같은 모습으로 내려 임하셨다(마 4:16, 17).
삼위 사이에는 독립된 인격체로서의 교통이 있고, 그 사역에서 서로 구분이 있다. 성부는 계획을 하시고, 성자는 성취를 하시고, 성령은 적용을 하신다. 예를 들어 성부께서는 죄인의 구원과 그 구체적인 방법을 계획하시고, 성자께서는 그 계획에 따른 율법의 요구를 성육신과 죽음을 통해서 성취하시고, 성령께서는 그 계획의 효력이 구체적으로 적용되도록 택하신 자들을 중생시키시고 거룩하게 하신다. 이는 마치 한 건물의 경우에 설계자와 건축업자와 입주자의 역할이 서로 구분되는 것에 비교할 수 있다.
그러기에 삼위에는 일정한 질서가 있어서 성부, 성자, 성령의 순서로 불려진다.
5) 삼위일체에 대한 오해
사람의 머리로서는 삼위일체를 이해하기가 참으로 어렵다. 그래서 교회역사에는 초대교회에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로 말미암아 많은 오해들이 생겨났다. 우리는 이러한 오해를 이단이라고 부르는데, 그 유형은 대체로 성자에 관한 설명여하에 따라서 다음 두세 가지로 나누어진다.
성자 하나님은 하나님으로만 계시지 않고 성육신이 되어 사람이 되시었다. 그러기에 그는 하나님이시면서 동시에 사람이시다. 그러나 사람의 머리로는 이 사실이 쉽게 납득되지 않는다. 그래서 한 쪽으로 치우쳐서 사람이라고만 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그들은 예수님은 사람에 불과하기 때문에 그를 주님으로 부르고 찬송하는 것은 큰 잘못이라고 한다.
예수님은 다른 사람들보다 경건성이 뛰어났기 때문에 마치 하나님처럼 존경을 받을 수 있을런지는 모르나, 하나님은 어디까지나 성부 하나님 오직 한 분뿐이라고 하면서 삼위일체를 부인한다. 초대교회에서는 사모사타 출신의 바울이라는 사람이 그 대표이었다. 지금은 유니테리안파와 같은 곳에서 이러한 주장이 이어지고 있다.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기에"(고전 12:3) 생겨난 이단이다.
정반대의 다른 오해도 있다. 성자의 참 하나님 되심을 지나치게 강조하기 위해서 그의 사람 됨을 부인하는 오해이다. 그들은 하나님이 한 분이시라는 것과 거룩하신 하나님은 죄악된 육체를 가지실 수가 없다는 생각에서 출발한다. 그들은 예수님의 육체가 실제로 우리와 똑같은 육체가 아니었고, 다만 신기루처럼 우리의 육체와 같이 보여졌을 뿐이라고 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한 분 되심을 강조하기 위해서 성부, 성자, 성령은 한 하나님이 필요에 따라서 그 모습을 바꾸어 나터나신 것이라고 주장한다.
천지를 창조하실 때는 성부의 모습으로 나타나시고, 율법을 완성하실 때는 성부로 나타나셨던 바로 그 하나님이 성자로 그 모습을 바꾸어 나타나시고, 구속을 적용하실 때는 성부나 성자로 나타나셨던 하나님이 이제는 성령으로 그 모습을 바꾸어 나타나신다는 것이다. 그들은 삼위일체를 한 사람의 연극 배우가 각기 다른 세 배역을 맡아 연기를 하는 경우와 같이 생각을 한다. 삼위일체를 설명할 때,‘내가 교회에 가면 집사이고 집에 가면 가장이고 직장에 가면 과장이지만, 사실 나는 한 사람입니다??라고 말하는 경우가 바로 이러한 오해에 해당된다. 초대교회에서는 시벨리우스라는 사람이 그 대표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오해는 우리들 주변에도 폭넓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서, 세심한 주의를 기우릴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예수를 시인하지 않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라"(요일 4:2, 3)고 하였기 때문이다.
또 다른 오해는 성자를 성부보다, 성령을 성부나 성자보다 못한 하나님으로 보는 것이다. 성자는 성부에게서 나셨고, 성령은 성부와 성자에게서 나오셨기 때문에, 삼위는 동등한 하나님이 아니라 우열이 있는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삼위 하나님을 우열이 있는 하나님으로 보는 것은 하나님을 세 분으로 보는 삼신론(三神論)에 이르고 만다. 삼위 하나님은 똑같이 영원한 하나님이시다. 그러기에 시간적 제약을 받지 않으신다. 그리고 그 영원한 시간을 초월한 것이므로 먼저와 나중이 따로 있지 않다.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으며, 순간이 영원 같고, 영원이 순간 같다(벧후 3:8). 따라서 삼위에는 우열이 있을 수 없다.
어거스틴이 말한 것처럼, 삼위일체 앞에 선 우리는 바닷가의 모래알갱이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삼위일체를 이해의 대상이 아니라, 경외의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 얼음속에 박힌 나무가지를 억지로 잡아 빼면 부러지고 만다. 그러나 봄이 오면 그 가지는 저절로 빠진다. 이해가 부족하면, 후히 주시는 주님께서 주의 기이한 것을 밝히 주시기를 기도하며 기다려야 한다.
기사원문 : http://www.amen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9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