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주간 기도에 대한 생각을 하고 말씀을 준비하며 조금은 답을 알 것 같았습니다.
“기도의 문제는 기도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순종하지 않으려’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언뜻 이해가 안 되는 말 같지만,누군가 비장하게 기도하려고 각오를 하고 작정을 했다면,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하는 기도이기 보다는 하나님의 뜻을 피해보려는 수단이 아닌가 의심이 가기도 합니다.
헬무트 틸리케라는 독일의 복음주의 신학자는 기도에 관하여 아주 의미 있는 말을 했습니다.
마태복음 7장에서 예수님이 기도에 대하여 말씀 하실 때, ‘두드리라’고 하신 이유가 우리의 생각과 다릅니다. 우리는 그저 우리의 구할 것을 구하는 ‘행동’으로 ‘두드림’을 해석했는데, 사실은 하나님 앞에서 ‘두드림’은 존귀하신 하나님 앞에 우리가 서 있다는 뜻이라고 말이죠.
하나님 앞에서 두드리는 행위는 함부로 쉽게 기도할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 제가 들어가도 되나요? 하나님 제가 기도해도 되나요?”라고 물어야 한다는 것은 그 분의 인격앞에 우리가 서 있다는 증거입니다.
존귀하신 하나님 앞에 문을 두드리며 만나게 될 때, 그 ‘기도의 방’에서 참된 기도가 시작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존중하지 않는 기도란, 내 마음대로 하나님을 통제하려는 아주 불경한 태도가 아닐까요? 사실 기도란 하나님 앞에서 ‘나’를 통제하는 것인데 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구하라’라는 말이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를 하라는 의미가 아닐까요?‘찾으라’라는 말 역시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님의 눈으로 인생의 문제를 찾으라는 의미가 아닐까요?
하나님을 존중하면 세 가지가 보일 것 같습니다.
내가 서 있는 곳에서 ‘하나님’이 보이고,
기도하는 ‘나’가 보이고,
내가 살아가는 ‘세상’이 보이죠.
그러면 ‘사명’이 보이지 않을까요?
하나님 앞에서 보이는 나는 참 부끄러운 존재죠. 그래서 회개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세상이 보이면 세상을 생각하고 기도하고 배려하고 할 일이 보이지 않을까요?
기도의 능력은 우리를 사명으로 인도할 때입니다.
(김병삼 목사님 페이스북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