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적인 장신구와 옷차림

Laydown2014.10.12 18:08조회 수 1106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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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링크 http://pantekost.blogspot.kr/2014/02/blog-post_8495.html

 

 

성경적인 장신구와 옷차림

성경적인 장신구와 옷차림

"또 이와 같이 여자들도 아담한 옷을 입으며 염치와 정절로 자기를 단장하고 땋은 머리와 금이나 진주나 값진 옷으로 하지 말고"(딤전 2:9)

"여자는 남자의 의복을 입지 말 것이요 남자는 여자의 의복을 입지 말 것이라 이같이 하는 자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 가증한 자니라"(신 22:5)

외적인 몸가짐은 거룩함의 중요한 요소이다.
많은 성경구절들이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옷을 입고 자신을 단장해야 하는 지를 가르치고 있다.
우리는 위의 두 구절을 포함한 성경의 말씀들을 살펴봄으로써 그리스도인의 외적 몸가짐에 관한 성경적인 원칙을 찾을 것이다.

두 가지 이유로 인해서 이러한 성경구절들을 이해하는 것은 매주 중요하다.
먼저, 의복의 형태는 성경이 쓰여진 시대 이후 급진적으로 변해왔기 때문에 우리는 의복에 관한 가르침을 새로운 상황에 적용해야 한다.
또한, 남성의 옷차림에 대해 논란이 시작되기 전에는 남성의 의복에 대해 몇 가지 규칙이 있었으므로, 만일 우리가 이 논제를 거룩함에 연관지을 수 있다면 이것은 남성과 여성에게 똑같이 적용되리라 본다.

아담함

먼저, 바울은 디모데전서 l장 9절에서 아담한 옷을 입는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아담함이라는 말의 가장 중요한 의미는 옷차림과 행동거지에 있어서 점잖고 정숙한 것이다.
바울은 여성들이 어떻게 자신을 단장해야 하는지 이야기하면서, 아내들은 그들의 구원받지 못한 남편들을 그들의 선한 행실로써 구원 얻게 할 수 있다고 말한다(벧전 3:2).
정숙한 옷차림에 대한 필요성은 아담과 이브의 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원래 그들은 무죄한 상태로 창조되었고 또한 하나님의 영광으로 옷 입혀져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선과 악을 구별하는 열매를 먹었을 때 그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잃어버렸고 또한 자신들이 벗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동물의 가죽으로 옷 입히셔야 했다.
그때 이후로 사람이 정숙하게 옷을 입는 것은 하나님의 계획이 되어 왔다.
사탄이 사람에게 그 반대의 일을 행하려 한다는 것을 주의하여 보라.
한 귀신들린 남자가 한 일들 중에 한 가지 일은 그의 옷을 벗는 일이었다.
그러나 예수께서 귀신을 쫓아 내셨을 때 그는 정상적으로 옷을 입고 있었고 또한 온전한 정신 가운데 있었다(눅 8:27, 35).
정숙하지 못하게 옷을 입는 것은 정욕적인 영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인데, 자신의 몸을 과시하고 이성을 정욕으로 유혹하려는 욕망을 나타내는 것이다.
경박함은 특히 남자들에게 강한 유혹과 부추김이 된다.
남성은 여성보다 더 시각적으로 유혹받기 쉽기 때문이다.
다윗은 이러한 유혹에 굴복해서 간음죄를 범했다(삼하 11:2), 그리고 남자들은 경박하게 옷을 입은 여인을 보고 시각적인 죄를 범하기 쉽다.
그러한 경우에 남자뿐만이 아니라 상대방 여성에게도 잘못이 있다.
오늘날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은 정숙한 옷을 입는 일이다.

정숙한 옷차림

그러면 이제부터 이러한 원칙들을 오늘날 우리가 관련되어 있는 질문들에게 적용해 보도록 하자.
정숙한 옷차림을 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정숙하게 옷을 입는다는 것은 이성에게 점잖지 못하게 몸을 드러내는 것을 삼가는 일이다.
정숙하지 못하게 옷을 입는다는 것은 이성에게 몸을 드러냄으로서 이성을 유혹하는 것을 말하고 혹은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그러한 행동을 하는 것을 말한다.
다음의 몇몇 가지는 정숙한 옷차림에 관해서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 할 부분들이다; 셔츠, 목이 패인 옷, 치마의 길이, 너무 끼는 옷, 속이 비치는 옷 등등.
남성이나 여성이나 정숙한 옷차림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옷차림의 기준은 반소매이상의 셔츠와 무릎 아래로 내려오는 치마이다.

허영

다음으로 바울은 여성들에게 정절로 자신을 단장하고, 땋은 머리나 금이나 진주나 값진 옷으로 하지 말 것을 당부하고 있다.
염치란 부끄러움을 알고 존경심을 가지는 것을 의미한다.
정절이란 침착하고 참을성 있으며 자신을 제어할 줄 아는 것을 의미한다.
다른 말로 해서 그것은 허영심의 반대말이다.
하나님께서는 교만을 미워하시므로(3장 참조), 천박한 겉치레는 하나님께 인정받지 못한다.
자아를 만족시키기 위한 옷차림을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그러므로 여성들은 외적인 옷차림에 의존해서는 안될 것이다.
"너희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벧전 3:3-4).

검소한 옷을 입음

허영심과 깊은 관련을 가지고 있는 것은 값비싼 옷을 입는 것이다.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빌 4:5).
이것이 우리가 금이나 진주나 비싼 의복으로 우리를 꾸며서는 안되는 이유이다.
값비싼 옷은 사회, 문화적 배경이나 개개인의 수입에서 다르게 정의될 수 있다.
그것을 구분하는 방법은 내가 입은 옷이 친척이나 같은 믿음의 지체들에게 내 부를 과시하는 수단이 되지는 않나 자문해 보는 것이다.
그것이 질투심을 불러일으키지는 않을까?
그것을 입는 것이 나에게 맡기신 하나님의 부에 대해 선한 청지기직을 하는 것인가?
많은 영역들에서 주의 일을 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동안 우리가 필요치 않은 옷이나 자동차나 비싼 보석에 탐닉하는 것은 명백히 하나님께 슬픈 일이다.
하나님께서 미국을 물질적으로 축복하시고 특히 많은 그리스도인을 축복하신 데에는 이유가 있다.
그분은 우리가 우리의 번영을, 우리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영혼을 얻는데 사용하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남성과 여성의 구별

신명기의 말씀은 또 하나의 중요한 개념을 일깨워준다.
바로 남성과 여성의 구별이 그것이다.
남녀간에는 생물학적 차이점 외에도, 정신적 감성적인 차이가 존재한다.
하나님께서는 남성 여성의 구별을 위해 몇몇 가지 사회적인 방법을 세워 놓으셨다.
말하자면, 옷과 머리의 길이(7장 참조)이다.
이러한 구별은 하나님께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그분은 남성과 여성의 각기 다른 삶의 역할을 지정하셨기 때문이다 (3장 참조).
또한 이것은 하나님께서 가증히 여기시는 동성애를 막는 중요한 방책이 된다(9장 참조).
의복에 있어서의 성의 구분 원칙은 남성이 치마를 입고 여성이 남성의 옷을 입는 유니섹스(Unisex) 성향에 의해 왜곡되고 있다.

신명기 22장 5절은 오늘날에도 유효함

많은 사람들이 이 구약성경의 구절은 오늘날의 사회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우리는 그러나 이 구절은 오늘날에도 적용되고 또한 다른 많은 성경구절들이 그것을 뒷받침 한다는 것을 말하고자 한다.
먼저, 어떤 이들은 성경이 쓰여진 시기에는 남성과 여성 양쪽이 긴 겉옷을 입었기 때문에, 의복으로서의 분명한 성 구분은 없었다고 주장한다.
양쪽이 긴 옷을 입었다는 것은 사실이나, 또한 남성이 입던 긴 옷과 여성이 입던 긴 옷 사이에 분명한 구분이 있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팔레스타인 지방의 역사와 문화를 살펴보면 그것을 알 수 있고, 성경 또한 그것을 증명한다.

더 심각한 반대는, 신명기 22장 5절은 율법의 일부로서 주어졌기 때문에 오늘날을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주장이다.
그것을 뒷받침하기 위해 그러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같은 장의 9, l0, l1절이 오늘날에는 지켜지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그 구절들은 다른 종류의 씨앗을 섞어 뿌리는 것과, 황소와 당나귀를 함께 밭에서 일시키는 것, 한가지 옷을 다른 종류의 실로서 짜는 것을 금지한 구절들이다.
이것을 대답하기 위해서, 우리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여 이 구절들이 우리에게 교훈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가려내야 한다.
5절은 남성과 여성의 도덕적인 구별을 가르친다.
이것은 유대인들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니며 또 오늘날에도 유효한 것이다.
9절부터 1l절의 말씀은 죄와 세상으로부터의 분리를 요구하는 가르침의 예표이다.
우리는 그들의 형식적인 요소들을 지킬 필요는 없지만 예표 안에 포함하고 있는 교훈은 지켜야 한다.
오늘날 우리가 추구해야 할 구분은 다른 종류의 씨앗들과 동물들 그리고 섬유들의 구분이 아니고 거룩함과 불경함, 영적인 것과 육적인 것의 구분이다.
두 가지 종류의 율법, 도덕적 율법과 형식적 율법의 차이점은 5절에서만 "가중한"이라는 단어가 쓰여졌고 다른 구절들에서는 사용되지 않았다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특히 5절은 사람이 이성(異性)의 옷을 입는 것은 하나님께 가증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가증한 것이란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것을 말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분의 좋아하시는 것과 싫어하시는 것을 바꾸시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왜냐하면 그분은 "나 여호와는 변역치 아니하나니"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말 3:6).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의 반응에 따라 그분의 심판을 내리거나 돌이키기는 하시지만 그분의 성품은 변하지 않는다.
그분은 절대적으로 거룩하시고, 또한 절대적으로 죄를 미워하신다.
모든 시대의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것을 피해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형식적인 율법을 문자적으로 지킬 필요는 없다(단 한 가지의 예외는 사도행전 15장 29절이다.
만일 그것이 부분적이나마 형식적인 것으로 간주된다고 하더라도 지켜야 한다).
형식적 율법은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들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고, 어떤 특별한 찬양의 방법들과 세상과의 구분에 관한 것들이다.
많은 경우들에 있어서, 하나님께서는 유대인들이 싫어하고 멀리해야 할 것들을 정해 주셨으나 그것들을 하나님께 가증한 것이라고 부르지는 않으셨다.
예를 들어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어떤 동물들은 그들에게 가중한 것이고 또 정결하지 못한 것이라고 하셨다(레 11장).
그것들은 하나님께나 오늘날의 우리에게 가증한 것이라고 불리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성의 옷을 입는 것은 하나님 앞에 가증한 것이므로 자동적으로 그것은 유대인과 그리스도인 모두에게 가증한 것이 된다.
어떤 가증한 것도 새 예루살렘에 들어오지 못하고 불 못에 던지우게 될 것이다.(계 21:8, 27).

신약의 가르침

신약의 여성들을 위한 이 기준은, 베드로가 구약의 여인들의 예를 통해 뒷받침함으로써, 또한 오늘날 우리가 따라야할 기준이 된다.
"전에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던 거룩한 부녀들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복함으로 자기를 단장하였나니"(벧전 3:5).
우리는 구약의 여성들이 신명기 22장 5절의 말씀을 따랐던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베드로는 구약의 그 기준이 오늘날의 기준이 되기를 의도했던 것이다.

몇몇 다른 신약의 말씀들이 현재도 하나님께서는 성의 구분의 중요히 여기신다는 것을 증명한다.
고린도전서 11장에서는 남성은 짧은 머리를 여성은 긴 머리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친다(7장 참조).
고린도전서 6장 9절∼10절은 남색하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라고 가르친다.
남색자는 성의 경계를 넘어서 여성처럼 행동하는 남성을 말하는데 여자처럼 옷을 입는 것은 남색행위의 한 요소가 된다.
남색은 동성연애와는 다른 것이고 성경에도 별도로 언급되어 있다는 사실을 주목하라.
남색은 동성애에는 못 미치나, 행동이나 용모에서 이성처럼 보이게 하는 모든 시도를 말한다.
이 성경구절은 다른 성을 흉내내며 행동하거나 다른 성의 옷을 입는 것을 하나님께서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잘 말해준다.

의복에 있어서의 성의 구분

우리가 성의 구분을 현대 서구사회에 적용해 보면, 남자는 드레스나 스커트나 블라우스를 입어서는 안되며, 여성은 바지를 입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세월은 마침내 우리가 여성뿐만이 아니라 남성들까지 가르쳐야 하는 시점에 이르렀다.
최근 미국에서는 한 남자 직원이, 그의 사무실 여직원들은 바지를 입을 수 있는데 반하여 자신은 치마를 입을 수 없다는 것에 대해 법원에 불평등에 대한 고소장을 제출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자가 치마를 입는 것이 잘못된 것이라는 데에 동의할 것이다.
예를 들어서 그들은 남자 목회자가 치마를 입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목전에서 여자가 바지를 입는 것보다 더한 것은 없다는 사실을 놓치고 있다.

신명기의 말씀은 모든 문화에 적용되도록 기록된 것이다.
신명기 말씀 안의 남자의 의복이라 함은 전통적으로 그 문화권 안의 남성이 입는 모든 의복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것은 문화에 따라서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자면, 스코틀랜드의 일부 지역에서는 남자가 킬트(Kilt, 치마처럼 생긴 스코틀랜드의 민속의상)를 입는 것이 적절한 일이지만, 같은 의상을 미국에서 입는 것은 부적합한 일이다.
만일 어떤 형태의 의상이 전통적으로 또 문화적으로 남성이나 여성 중 한쪽에 의해서만 사용되어 왔다면, 그것을 다른 성이 입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물론 다른 문화권에 속한 사람처럼 서구식으로 옷을 입기로 한다면 그는 서구의 옷 입는 방식을 따라야 할 것이다.

오늘날 세상에서 바지가 남성의 옷이라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심지어는 여성을 위해서 디자인된 바지마저도 남성의 바지와 아주 비슷하게 만들어 졌기 때문에 그것들은 "남자의 의복"이라는 개념 안에 포함된다.
포함된다는 것은 일부분으로서 속한다는 것이고 또한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모든 형태의 바지들은 명백히 남성의 의복과 연관되어 있고 또한 그러한 형태와 기능을 가지고 있다
청바지와 같은 바지들에 있어서 소년 과 소녀들이 입는 것이 같은 것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역사적으로, 여자가 바지를 입는 것은 잘못이라고 인식되어 왔다.
사실상, 제 2차 세계대전 이전에는 여성이 바지를 입는 것이 미국 내에서조차 거의 인정받지 못하였다.
그때, 여성들은, 남성들이 전장으로 나가는 동안, 공장 내에서 남성들의 위치를 차지하기 시작했다.
이 당시에 여성들의 그들의 머리를 자르는 것과 담배를 피우는 것과, 술을 마시는 것이 일반화되기 시작했다.
따라서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바지는 남자의 의복으로 간주되었다.
오직 사회가 혼란하고 여성들이 남성들의 역할을 전횡할 때 여성들이 바지를 입기 시작했다.

심지어는 오늘날에도 바지가 남성의 의복이라는 증거가 많이 남아있다.
바지는 남자의 기본적인 의복이고 또한 남자를 상징하는 것이다.
항상 바지만을 즐겨 입는 여성을 주의 깊게 본 일이 있는가?
그들의 말씨나 동작의 독특한 버릇에는 분명한 변화가 있고 그들의 여성적인 태도는 줄어든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다리를 끈다거나하는 식으로 여성적이지 않게 행동하기도 쉽게 된다.
만일 드레스를 입는다면 그 여성은 훨씬 더 여성적으로 행동하고 또 여성적으로 보일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이신 것이고 또 원하시는 것이다.
우리는 또한 여성이 입는 대부분의 바지들은 여성의 드레스보다 조심성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이 또한 여성이 바지를 입어서는 안되는 또 다른 이유이다.

한때는 대부분의 보수적인 교회들이 이 문제에 대해 같은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이 이 문제에 대해 타협을 했을 때, 그들은 흡연과 음주 그리고 다른 거룩함의 문제들에 대해서도 타협을 했다.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개신교 목사들은 동정녀 탄생을 부인한다.
따라서 다른 교회들이 의복에 대해 이러한 가르침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은 논의의 대상도 되지 못한다.
그들은 변했지만, 하나님께선 변하시지 않았다.
우리는 성경을 따를 것인가?
아니면 세상이 우리의 길을 잃게 해서 마침내 하나님 말씀의 근본적 가르침마저도 부인하게 할 세상의 흐름을 따를 것인가?

지금껏 우리가 다룬 것 이외에는 의복에 대해 특별한 제한은 없다.
성경에는 예를 들어 모자 같은 것에 대해서는 특별한 가르침이 없다.
정숙하고 기품이 있는 옷이라면 우리가 입어도 좋은 옷들이다.
물론, 좋은 취향과 관습이 상황에 따라서 특정한 옷들은 어울리지 않게 할 수도 있다.
특히, 영적 지도자들은 타인들 앞에 좋은 인상을 남겨야 하고 단정한 정장을 해야 한다.
만일 경제적인 사정으로 정장을 하기가 어려운 사정이라면, 거룩함의 잣대로 그를 판단해서는 안된다.
야고보는 허름한 옷을 입은 사람과 돈이 많아 옷을 잘 입은 사람을 교회 안에서 차별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약 2:1-9).
그러나 혹 가난할지라도, 그리스도인은 깨끗하고 단정하게는 입을 수 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대사(大使)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를 높이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우리가 좋은 대사가 되기 위해 새 옷을 입을 필요는 없지만, 단정한고 깔끔한 옷을 입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세상으로부터의 구분

이 시점에서, 외적인 모습에 영향을 미치는 거룩함의 다른 중요한 요소를 고찰해 보기로 하자-그것은 바로 세상으로부터의 구분이다.
하나님께서는 향상 그분의 백성이 세상으로부터 구별되기를 원하셨다(l장 참조).
이것은 외적으로도 세상과 구별됨으로서 세상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을 알아볼 수 있도록 하는 것도 포함한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그들의 식량과 의복, 그들의 농사법과 찬양하는 것, 그리고 그들의 안식일로서 이방인과 분명히 구별시키셨다.
누구든 유대인을 행동을 살핌으로서 구별해 낼 수 있었다.
결과로서, 성경 속의 고대 민족들 중 유대인만이 그들의 전통적인 문화와 종교적인 유산을 지켜낼 수 있었다.
이집트인들이 옛날 바로 왕의 시대와 같은 문화와 종교, 언어를 가지고 있지 않다.
페르시아와 시리아, 그리스와 로마인들도 그들의 고대 문화와 종교, 정치적인 형태를 가지고 있지 않다.
힛타이트와 바벨론, 에돔과 앗시리아, 팔레스타인과 암몬 같이 이스라엘과 공존했던 다른 민족들과 나라들조차도 독립국으로 살아남지 못했다.
그러나 유대인들만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힌 시절과, 로마의 점령, 그리고 국토없이 1900년을 지내면서도 자신들의 문화적 정체성을 지켜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율법이 그들을 다른 나라들과 구분시켰고 그들의 정체성을 지키게 한 것이다.

비슷하게도, 그리스도인이 택하신 자들로서 남기 위해서는 내적 외적으로 구별됨이 있어야 한다.
의복과 장식에 있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다르게 하기 위해 많은 것들을 선택할 수 있으셨다.
하지만, 그분은 우리로 구별함을 지니고 동시에 정숙함과 겸손함, 그리고 성의 구별을 지니게 하게 하기 위해 특정한 기준을 선택하셨다.
요점은 의복과 행동 그리고 장신구에 대하여 거룩함의 기준을 지키는 것은 세상과 구별되는데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그것들은 그리스도인과 유혹, 죄, 세상사이에 거리를 만든다.
그것들은 진정한 그리스도인을 구분하는 방법이 될 수도 있다.
이러한 구별함의 원칙들과 병행해서, 또한 우리를 세속적으로 보이게 할 가능성이 있는 것들은 피해야 한다.
어떤 형태의 머리모양과 옷차림은 성경의 가르침에 위배되지 않을 지는 몰라도, 너무 세속적일 수 있다.
다른 문화와 시대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을 지는 몰라도,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에서는 그것들이 불경스러운 모임이나 태도를 상징할 수도 있다.
한 사람의 외모는 그 사람의 삶의 방식과 신념, 그리고 태도에 대해 많은 것들을 이야기해 줄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예를 들어서 히피족은 그들의 머리모양과 옷차림으로서 자신들의 반항의식과 정치적 생각, 그리고 성적인 방종을 나타내려 하였다.
중국인들과 일부 서양인들은 마오 망토를 입음으로서 그들의 공산주의 사상을 나타내었다.
최신유행이나 특정한 사람들을 의미하는 패션을 주의해야 할 일이다.
스스로에게 그러한 유행을 따라가는 것이 죄인들에게 그리스도인의 좋은 본이 될 수 있을까 자문해보라.
이것이 나의 반항심을 나타내는 것은 아닌가?
혹은 이것이 교회 안팎의 사람들에게 좋은 모범이 되는 것인가?
혹시 이것이 다른 믿음의 지체들에게 거치는 반석이 되는 것은 아닌가?

우리는 세상의 일시적 유행이나 유별난 취미를 따르는 것에 주의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서, 우리는 모르는 사이에 세상에 너무 많이 빠질 수가 있다.
또한, 경쟁심이 우리를 사로잡을 수도 있다.
이러한 태도는 겸손함과 거룩함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우리는 세상과 그 욕망들에 사로잡혀서는 안된다.
아마도 우리는 어떤 일들을 세상과 너무 친근하게 보인다는 이유만으로도 피해야 할 것이다.

세상과의 구별이란, 세상과 벗되게 할 수 있는 모든 것들로부터 선을 긋고 멀리하는 것을 의미한다.
목사는 이것을 성도들에게 분명히 알려야 한다.
신도들은 자신들이 동의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더라도 목사가 세워놓은 기준을 순종해야 한다.
그럼으로써 기본적인 거룩함의 기준들을 지킬 수가 있다.
만일 어떤 이들이 특정한 영역에 대해 순종하지 않는다면, 반항하는 마음과 타협이 점점 강해져 마침내 거룩함을 완전히 손상시키게 될 것이다.
혹은 그 반대로, 목사가 너무 가혹하고 참을성이 없어서, 현명치 못하게 성도들을 반항하게 하고 새 신자를 교회에서 몰아낼 수도 있다.

화장(Painting of the face)

이 주제는 허영심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
특히, 화장은 염치와 정절로 자신을 단장하라고 가르친 바울의 가르침에 정면으로 배치된다.
염치는 존경심과 남 앞에서 자신을 나타내기를 꺼리는 겸손함이지 뻔뻔스러운 자기주장이 아니다.
화장은 명백히 다른 성을 매혹하기 위한 수단이다.
화장은 관능성을 강조함으로서 남성들의 진정한 사랑이 아닌 욕정을 불러 일으킨다.
구약성경이나 역사를 통해 화장은뻔뻔스러움, 자신을 나타냄, 유혹과 매춘과 관련을 가지고 있다.
역사에 따르면, 성적으로 어필하기 위해 눈꺼풀을 화장하는 것은 기원 약 3000년 전 고대 이집트에 처음 등장하였다.
이러한 행동은 잠언 6장 25절에 다음과 같이 나타난다.
"네 마음에 아름다운 색을 탐하지 말며 그 눈꺼풀에 홀리지 말라"
이 성경구절이 말하는 여자는 주변의 다른 구절들에서 악녀나, 이방여인, 매춘부 혹은 음란한 여자라고 불린다.
나중에 얼굴에 화장을 하는 것은 남자를 유혹하는 수단으로 사용된다.
유명한 예로서, 열왕기하 9장 30절을 읽어보라.
예후는 이스라엘의 기름부음 받은 왕으로서 주님의 말씀을 미워한 아합의 가족을 멸절시키는 임무를 가지고 있었다.
아합의 아내인 이사벨은 예후가 오고 있다는 말을 듣고는, 자신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예후를 유혹하고자 한다.
그를 유혹하는 방법으로, 성경은 그녀가 자신의 얼굴을 칠했다고 말하고 있다.
예후가 도착했을 때, 그는 그녀의 전략을 알았고 그녀를 죽이라고 명령했다.

이사벨과 자신의 나라를 구한 에스더의 현저한 대조를 살펴보라.
그녀는 그녀의 임의대로 페르시아 왕 앞에 무엇이든 내어놓을 수 있었다.
다른 모든 왕비들은 모든 종류의 화장품들과 장신구들을 요구해 받았으나, 에스더가 요구한 것은 무엇이었나?
아무것도 없었다(에 2:13-15).
그녀는 왕을 유혹하기를 원하지 않고 그녀 모습 그대로 받아들여지기를 원했다.
그녀는 하나님의 뜻을 바라고 기다렸다.

다른 두 개의 성경구절이 화장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 말해준다.
그것들은 우리들에게 아주 중요한 것들이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하나님께서 화장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말해주기 때문이다.
예레미야 4:30절에서, 하나님께서는 타락한 이스라엘을 자신의 연인들에게 아름답게 보이기 위해 화장하고 장식을 하는 여자로 묘사하셨다.
비슷한 구절은 에스겔 23장 36-44절에서 발견된다.
40절은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을 상징하는, 자신들의 눈을 칠하고 장신구를 두른 두 여인에 대하여 묘사한다.
이것이 왜 중요한가?
마지막 구절들에서 이 두 여인은 간음의 죄가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화장하는 것을 간음이나 매춘과 연관지어 생각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성경 어디에서도 화장을 덕 있는 여인과 연관짓는 것을 찾아볼 수 없고 항상 간음이나 매춘과 연관을 짓고 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화장과 연관지어서 생각하시는 것이므로, 우리는 이러한 행위를 피함으로서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릴 수 있다.

역사적으로, l700년대와 l800년대의 영국 국회에서 여성의 화장을 금지하기 위한 법안이 상장되었었다.
대부분의 미국 식민지들에서 이러한 행위는 직접 법으로 금지되어 있었거나, 사회에서 나쁘게 생각되어졌었다.
브리태니카 백과사전을 보면 제 2차 세계대전 이후에야, 화장에 대한 제한이 완화되고 마침내 사라지게 된 것을 알 수 있다.
심지어는 그 당시에도, 화장을 하는 것은 드문 일이었고 제한되어 있었다.
그 이전에는, 자신의 머리를 자르고 화장을 하는 여자는 창녀나 비슷한 사람으로 간주되었다.
1945년까지도 대부분의 보수적인 교회들은 얼굴에 화장을 하는 것을 죄라고 여겼다.
그러나 그들은 서서히 흡연, 음주나, 춤추는 것처럼 화장하는 것을 허용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우리에게, 화장이 그저 단순한 유행이나 근대화의 산물이 아닌 오늘날의 교회들이 다른 많은 악들과 함께 받아들인 고대 풍습의 재현임을 알게 해준다.
영국과 미국의 개척 부흥사는 그것을 정죄하였다.
로마 제국의 초기 기독교인들은 그것을 하지 말도록 끊임없이 가르쳤다.
다시 한번, 우리는 현대의 많은 교회들을 따를 것인가?
아니면 성경을 따를 것인가?
결정해야 한다.

얼굴을 칠하는 것은 바울이 가르친 염치와 정절로 자신을 단장하는 것과 반대된다.
우리는 성령께서 이 영역에서 우리를 인도해 주심으로 우리가 이 세상이나 이 세상에 있는 것을 사랑하지 않도록 하나님께 구하여야 한다.

보석

보석과 장식으로 자신을 치장하는 것은 허영심의 한 형태이며 절제에 대한 가르침에 위배되는 것이다.
바울은 여성이 황은 머리나 금, 은 혹은 값비싼 옷으로 자신을 치장하지 말라고 가르치고 있다.
치장하는 것은 더 아름답게 보이게 하기 위해 장식하고 꾸미는 일이다.
베드로는 그들의 외모를, 머리를 땋는 것이나, 금을 두르는 것과 좋은 옷으로 꾸미지 말라고 가르치고 있다.
땋은 머리는 그 당시에 정교히 머리를 꾸미던 것을 말하는 것으로 특히, 진주나 금실을 머리 사이에 섞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성경구절들은 모든 화려하고 비싼 과시에 대해서, 심지어는 너무 비싼 의복에 대해서도 경고하고 있다.
이러한 모든 것들을 이해하기 위해서 율법과 베드로가 거룩한 단장의 예를 찾기 위해 사용한 구약의 구절들을 살펴보도록 하자.

우리의 이해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구절이 출애굽기 33장 l절과 11절 사이에 나타난다.
이스라엘 백성은 방금 금송아지를 만들어 그것에 경배하는 죄를 범한 참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시겠다고 친히 약속하셨었다.
그러나 그의 공의와 그들의 죄로 인해서 하나님께서 그들 중앙에 임하시지 못하게 되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자비를 베푸사 대신 천사를 보내셔서 그들을 인도하시겠다고 말씀하셨다.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그들을 인도하시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들었을 때 그들은 흐느끼기 시작했다.
그들의 슬픔과 회개를 나타내기 위해 그들은 몸에 아무 장식도 걸치지 않았다.
주님께서는 그들이 목이 곧은 백성이라고 하시고 "너희는 단장품을 제하라"고 말씀하셨다.
따라서 그들은 "한 사람도 그 몸을 단장하지" 아니하였다.
그들은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서 그들의 허영심을 버리기를 원했다.

다음, 모세가 성막으로 걸어갈 때, 모든 백성들은 그들의 장막문 앞에 서서 그것을 바라보았다.
그들의 헌신의 결과로서, 주께서 구름가운데 영광으로 나타나셨고 모든 사람들이 보았다.
모든 백성들이 주를 찬양하였고, 그분은 모세에게 마치 벗에게 이야기하듯 말씀하셨다.
불필요한 장신구를 제하는 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얼마나 하나님의 임재를 갈구했던가를 증명해 주었다.
그것은 그들이 자신을 부인한다는 사실을 증명해 주었다.
이것은 우리가 이러한 종류의 헌신을 하나님께 드리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충만한 임재를 누릴 수 없고 또한 진정으로 하나님께 가까이 다가갈 수 없다는 것을 말해준다.
진정으로 하나님께 헌신된 사람은 자신을 보석으로 꾸미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허영이며 겸손함과는 정면으로 대치되는 것이다.

장신구를 두르면 가지게 되는 허영심에 대해서는 이사야 3:16-26에 잘 나타나 있다.
이스라엘인들은 교만해졌고 그것은 하나님을 노하게 했다.
그 결과로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마음에 품고 있는 교만의 상징인 모든 장신구를 제하겠다고 말씀하신다.
다음은 스트롱 헬라어 사전과 차일드사전, 미국 현대어성경에서 나열한 장신구와 값비싼 옷들의 예이다: 발을 위한 방울들, 머리를 묶는 망, 달처럼 생긴 둥근 머리장식, 목걸이, 팔찌, 긴 머플러, 테 없는 모자, 다리에 매다는 장신구들, 머리띠, 금속판(현대어성경에서는 향수상자), 귀걸이, 반지, 코걸이, 페스티벌용 의상, 소매 없는 망토, 넓은 주름옷, 지갑들, 유리들(거울들), 좋은 린넨, 두건, 자수 장식이 달려있는 여자의 가슴 옷.
많은 종류의 지갑들이 정교하게 장식되어 있었고 매우 비쌌다.
거울들과 향수상자는 종종 목이나 허리띠에 달려 있었다.
이러한 모든 것들은 그 착용자들로 하여금 허영심을 가지게 할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사실상, 그것들을 착용하는 가장 주요한 이유는 허영이다.

이것들을 우리가 알아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겸손함과 중용을 나타내야하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말해서, 그것은 값비싼 보석이나 옷을 착용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것들을 착용하거나 입는 동기는 잘 살펴져야 한다.
의문이 생기는 것들에 대해 결정할 때에는 먼저 스스로에게 물어 보라:
이것이 바울의 절제에 관한 가르침에 적합한가?
이것이 너무 화려하거나 야하지 않은가?
왜 내가 이것들을 입거나 착용해야 하나?
이것을 입거나 착용하는 것이 실제적인 도움을 주는가?
그것을 착용하는 것이 실제적인 이유가 있다고 할 때에는, 그것이 너무 사치스러운 것은 아닌가?
그것은 과연 그리스도인에게 어울리는 일인가?

몇 가지 실제적인 예들을 들어보자.
대체로 손목시계와는 달리 귀걸이나 목걸이, 팔찌 등은 분명히 장신구이다.
손목시계마저도 그것이 너무 비싸고 그것을 착용하는 사람의 마음이 올바르지 않다면 허영이 될 수 있다.

최근에 신자들 사이에 보석류를 착용하는 일이 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절제의 정신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오늘날 보석을 착용하지 않는 신자들은 칭찬을 받을 만하다.

기본적으로, 신자들은 목사의 지도를 따라야 한다.
왜냐하면 그는 그 교회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신자들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가지기를 원하시는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겸손히 구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신자들에게 이 문제에 대한 확신을 주신다.
어떤 문제에 있어선, 목사가 그의 개인적인 확신이나 충고를 성도들에게 설명해 주더라도 신자들에게 그것을 따를 것인지에 관한 자유를 주는 것이 현명한 일이다.
어떤 것들은 죄가 아닐지라도, 그 뒤에 숨어있는 동기가 그들로 죄를 짓게 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라.
더 값싸고 덜 화려한 것들을 고를 수도 있지 않을까?
물론 우리는 옷도 잘입고 좋은 취향을 가지는 것을 더 선호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야하거나 허식하지 않으면서도 옷을 잘 입을 수 있다.
많은 경우에 가장 단순하고 품위 있게 입은 사람들이 가장 고상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또한 다른 이유를 말하자면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고 더 헌신하기 위해 어떤 것들을 포기해야 하는 것도 사실이다.
어떤 행위들이 우리를 지옥으로 보내지는 않을 지라도, 그것들을 피함으로서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갈 수도 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원하는 바가 아닐까?

인도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더욱더 조심해야 한다.
여기서는 우리의 개인적인 확신을 더욱 필요로 한다.
죄가 되지 않는다 해도 어떤 것들은 피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좋은 인도자가 되는데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성경에 그것들에 대한 특별한 기준이 나와 있지는 않으나, 지도자는 보통 그의 행동으로서 자신의 기준을 결정한다.
보통 성도들은 목회자와 그의 아내가 자신들을 위해 설정한 기준보다 약간 떨어지게 생활한다.
만일 당신이 괜찮다고 생각하는 작은 반지를 끼고 있다면, 성도들은 당신이 착용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는 큰 반지를 끼려 할 지도 모른다.
어떻게 당신이 그 차이점을 상대방에게 설명할 것인가?
따라서 목회자는 자신의 성도들을 올바로 인도할 수 있도록 강한 확신을 주시도록 하나님께 구하여야 할 것이다.
그는 다른 사람들보다는 더 강한 기준을 자기 자신을 위해 설정해야 한다.
만일 의심이 생기다면, 모든 그리스도인이 그렇겠지만 특히 목회자는, 세상으로 인도할 가능성이 있는 쪽 보다는 더 나은 거룩함으로 인도할 가능성이 있는 쪽을 택하여야 한다.

어린이들을 위한 충고들

또 다른 한 가지 질문이 있다,
그것은"이러한 원칙들이 어린아이들에게는 어떻게 적용되는가?"라는 것이다.
성경은"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잠 22:6)라고 말한다.
우리는 거룩함을 우리의 자녀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물론, 어른들에게는 조심성 없는 옷차림이 어린이들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공중 앞에서 수영복이나, 팔과 둥이 드러나는 옷과 같이 아주 노출이 심한 옷은 입지 않도록 해야 하겠다.
왜냐하면 그들이 자라났을 때 위험한 선례로 남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이 보석이나 화장을 하게 해서도 안되겠다.
왜냐하면 그러한 것들은 그들에게 잘못된 태도를 가지게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여자아이들은 바지를 입어서는 안되고 그들의 머리를 잘라서도 안된다.
남자아이들은 드레스를 입거나 머리를 너무 길게 해서는 안된다.
이러한 것들은 나쁜 예가 될 뿐만 아니라, 성경의 성 구분의 원칙은 어린아이들에게도 동등하게 적용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인 부모는 그들의 자녀가 어린 시절부터 거룩함에 대해 배우며 자라게 할 의무가 있다.
이것이 성경적인 방법이다.
그리고 또 이런 방법만이 후에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지금껏 살펴본 것들을 요약하면, 성경은 무엇을 입고 무엇을 입지 말라는 상세한 규칙을 말한 적은 없다.
우리는 딤전 2:9과 벧전 3:1-5 그리고 신명기 22장 5절의 가이드 라인이 있다.
또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에 새겨 놓으신 율법이 있고 또한 우리의 완전함을 위해 섬기는 교회의 권위가 있다.
분명 우리는 과도한 장신구나, 야한 복장 그리고 세속적인 것들을 경계해야 한다.
성경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를 교만하게 하거나, 심지어는 교만하게 보이게 하는 어떤 것이라도 버려야 한다.
사탄도 천사장의 하나로 창조되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그러나 그의 아름다움이 그를 교만하게 했을 때 타락하고 말았다.
간단히 말해 우리는 세상적인 것들의 본이 되지 말고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본이 되어야 한다.

초대 교회의 역사

그리스도인의 옷차림에 대해서 마무리지으면서 초대 교회에서는 이것에 대해 어떻게 가르쳤는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들이 믿었던 바의 좋은 예는 A.D.3세기에 터툴리안이 쓴 "여성의 복장에 관하여"라고 쓴 글에서 찾아볼 수가 있다(초대교회의 유산 "A Treasure of Early Chistianity, Anne Fremantle, editor" 참조).
이 글에서, 그는 루즈와 머리염색, 눈 화장과 보석 그리고 장신구를 반대하였다.
그는 그리스도인의 절제와 희생에 대해 주의를 환기시키고자 하였다.
그는 만일 하나님께서 음욕을 간음과 같이 간주하신다면, 야한 의복으로서 음욕을 불러일으키는 사람들도 분명히 심판하실 것이라고 기록했다.
그는 또한 사치와 보석 장신구에 익숙해져 있는 사람은 그리스도를 위해 목숨을 포함한 자신의 모든 것을 드리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음의 인용구를 보라.
"당신은 겸손해야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고상함의 한계를 넘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뜻에 반하여 자신의 피부를 독으로 괴롭게 하고, 그들의 뺨을 루즈로 칠하며, 그들의 눈가를 검게 칠하여 눈을 더 크게 보이고자 하는 여자들은 죄를 짓는 것입니다.
의심할 바 없이 그들은 하나님의 성형 실력에 만족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뚜쟁이나 포주 같은 역할을 하는 그러한 옷이나 외투에 당신을 맡기지 마시고…만일 우리가 하늘의 것을 원한다면 세상적인 장신구들을 버립시다"

의상과 장신구에 연관된 거룩함에 대한 성경구절은 구약과 신약에서 이미 살펴보았다.
그것들은 초대교회의 신자들에 의해서 지켜졌고 기독교국이라 불리는 나라들에서 20세기 이전까지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졌다.
종교 개혁자들과 부흥사들, 그리고 과거의 종교부흥운동은 그것을 가르쳤다.
대부분의 교회들은 한때 그것을 지켰으나 점차적으로 그것을 져버렸다.

오늘날의 도전

마지막 결정은 우리에게 달려있다.
정숙함과, 겸손함, 그리고 중용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을 간직할 것인가?
성의 분별을 계속 지키고, 세상으로부터의 구분을 계속 지킬 것인가?
아니면, 세상의 조류를 따라갈 것인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것인가?
하나님이여 우리가 진리를 붙들고 완전한 거룩함을 지킬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우리가 당신의 말씀에 의해서 세워진 이정표를 지키고, 우리 영적인 조상들의 가르침과 성령의 인도를 따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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