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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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의 파시스트 독재자 베니토 무솔리니가 파시스트 집회를 열고 있는 모습(왼쪽)과 1934년 6월 14일에 베니스에 도착한 나치 독일의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와 만나 악수를 나누는 모습(오른쪽) 

 

"나는 그 시대에 태어났습니다. 무솔리니는 우리가 밥 굶지 않게 해줬죠." - 이탈리아 로마의 한 카페 사장인 78살의 파스콸레 모레티가 선반에서 무솔리니의 사진이 담긴 신년 달력을 꺼내며 일간 가디언 기자에게 했던 말의 내용 중

 

"파시스트였던 베니토 무솔리니는 기차가 제시간에 운행하게 만들고 장대한 기념건물을 건조하여 인기를 얻었다." - 바버라 오클리, 여자 인디아나 존스라는 별명으로 불릴 만큼 모험심이 넘치는 사람이며 세계를 돌아다니며 직접 겪은 진기한 체험을 견실한 과학적 탐구와 결합시켜 작품을 쓰고 있다. 베링 해를 건너는 옛 소련 트롤 어선의 러시아어 통역자로, 남극 기지에서 무선사로 일한 적도 있고 미 육군 사병으로 입대하여 대위로 전역하기도 했다. 통합 시스템공학 박사로 현재 미시간 주 오클랜드 대학 공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최근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생명공학협회 부회장으로 뽑히기도 했다ㅣ그의 저서 <나쁜 유전자> p398

 

"5년만에 로마는 전세계인들을 놀라게 해야 한다. 로마는 아우구스투스 시절에 그랬던 바와 같이 거대하고, 질서정연하며 강력한 도시가 되어야 한다." - 1925년에 베니토 무솔리니가 선언했던 말의 내용 중

 

"무솔리니는 국가의 '신성한 이기주의'를 위해 강권 정책을 채택할 것이라고 확실하게 밝혔다. ······ 야당은 해체되고, 언론도 통제를 받았다. 그러나 그는 한편으로는 근대화에 박차를 가하고 건설 붐을 일으켰다. 마피아도 사라졌다. 1929년에 무솔리니는 교황에게 바티칸을 이양하고 교회와 화해했다. 국내 정치를 안정시킨 그는 외교 정책에서 자신의 명예욕을 드러냈다." - 알렉산더 데만트, 독일 베를리자유대학교의 고대역사학과 교수로 고대 후기 역사와 유럽의 문화사 및 정신사 분야를 중점적으로 연구하고 있다ㅣ그의 저서 <16일간의 세계사 여행> p387~p388

 

"그동안 무솔리니의 이탈리아는 레닌의 러시아와 마찬가지로 경험적인 실재였다. 모방하거나 피하기 위해 파시즘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이탈리아로 몰려들었다. ······ 무솔리니는 그의 애매모호한 표현들로부터 마술같이 새로운 파시스트 문명을 불러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고, 또 그렇게 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가 행동을 좋아했고, 행동할 수 있다고 생각했으며, 실제로 행동에 재능이 있었다는 점이 대규모 건설 프로젝트를 낳았다. 무솔리니는 또 말라리아와 싸웠다. 당시까지 말라리아는 중남부 이탈리아를 피폐하게 하는 큰 고민거리였다. 폰틴마쉬(Pontine Marshes) 간척 사업은 큰 업적이었으며, 파시스트식 에너지의 상징이 되었다. ······ 동쪽의 볼셰비키주의와 서쪽의 자유주의를 동시에 거부한 알프스 산맥 북쪽 사람들에게는 이탈리아의 르네상스가 제3의 길이 될 수 있는 것처럼 보였다." - 폴 존슨, 옥스퍼드 대학의 스토니헐스트와 맥달란 칼리지를 졸업했다.『레알리테』지의 부편집장과『뉴 스테이츠먼』지의 편집장을 역임하면서, 역사·인문·종교 분야에서 30권 이상의 책을 저술했다. 이 중『모던 타임스』는 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로 수십 개의 언어로 번역된 바 있으며,『기독교의 역사 A History of Christianity』와『유대인의 역사 A History of the Jews』또한 이미 전 세계적으로 정평이 난 저작이다. 이외에도 그는 워싱턴 D. C.에 있는 공공정책 미국기업연구소에서 커뮤니케이션 부분 초빙 교수로 일했으며, 마가렛 대처 수상과 토니 블레어 수상의 고문역을 맡은 바 있다.「런던 타임스」「뉴욕 타임스」「월 스트리트 저널」등 권위 있는 매체에 꾸준히 글을 기고하고, 학생·기업가·정치인을 대상으로 지속적인 강의 활동을 하고 있다ㅣ그의 저서 <모던 타임스2> p197~p199

 

세계 역사에서, 특히나 근현대사에서 보인 가장 두드러진 특징을 꼽으라고 한다면 아마 극좌와 극우의 출현이 아닐까 생각한다. 즉, 공산주의를 극단적으로 주장하던 소련, 그리고 파시즘을 주장하던 이탈리아와 나치즘을 주장하던 독일이 바로 그 대표적인 극좌와 극우의 사례인 것이다.

 

그리고 본 논평에서는 바로 세계 최초의 파시스트 지도자를 다뤄보고자 하는데, 그는 바로 이탈리아의 독재자였던 베니토 무솔리니이다.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고있는 사람이라면 이 무솔리니를 형편없이 평가하기 일쑤다. 그럴 것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의 이탈리아, 즉 무솔리니의 활약은 너무나도 미미했다.

 

실제로 오히려 같은 추축군 진영이었던 나치 독일에게조차 골칫덩이로 여겨질 정도로 이탈리아의 전쟁능력은 형편이 없었고, 오히려 연합군에게 조롱의 대상이었다. 무솔리니와 이탈리아인들의 원대한 꿈이었던 과거 로마제국의 옛 영광을 실현시키고자 하는 과거로의 회귀와는 크게 대조되는 모습을 보였다.

 

이러한 이유로 무솔리니와 파시즘의 온상지였던 이탈리아에 대해서 상당히 저평가가 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필자는 이러한 인식을 수정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 따라서 본 논평에서 파시스트 지도자 무솔리니의 업적과 파시즘의 온상지였던 이탈리아에서 벌어진 큰 변화에 대해 초점을 맞춰 살펴보고자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파시즘의 온상지였던 이탈리아는 파시스트 지도자로 독재자인 무솔리니가 정권을 잡은 1923년 이후부터 전쟁 직전인 1939년까지, 그러니까 16년에 걸쳐서 굉장히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혹자는 이탈리아의 독재자 무솔리니를 우리나라의 박정희 대통령과 비교하기도 하는데, 전쟁만 빼놓고 본다면 그렇게 보는 것도 큰 무리는 없을 정도로 비슷한 면모들이 보여진다.

 

실제로 현재 이탈리아에서는 무솔리니의 손녀가 꽤 영향력을 행사하는 정치가로 성장해 활동하고 있으며, 유로존 위기로 인한 경제적 궁핍의 상황에서 이탈리아에서의 무솔리니에 대한 향수와 추억은 가히 독보적일 정도로 이탈리아인들에게는 꽤나 긍정적인 인물로 여겨지는 인물이 바로 무솔리니이다. 전 총리였던 베를루스코니도 무솔리니에 대한 찬양발언을 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아무튼 본 논평에서는 그의 업적에 초점을 맞춰 그가 이탈리아 내에서 실현시킨 정책들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무솔리니가 당시 이탈리아에 가져온 변화는 굉장히 뜻깊은 변화였고, 실제로 그랬다. 예컨대 그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경제난에 빠진 이탈리아를 수렁에서 건져내어 1920년대 초인 4년 동안에만 무려 20%의 경제성장률이라는 기염을 토해냈다.

 

그리고 실업률은 80%나 줄였다. 그리고 앞서 논평에서 다뤘듯이 그는 마피아들을 대대적으로 소탕하여 치안질서를 유지했다([세계사광의 역사논평]<145>마피아들을 근절시킨 이탈리아의 독재자 무솔리니와 근절된 마피아들을 이탈리아에 되살린 미국 ← 관련자료 참고). 이외에도 그는 국가주도의 공업화를 통한 대규모 토목공사들을 진행시켰는데, 이를 통해 경제발전을 꾀했다.

 

그 이후에 등장한 히틀러나 우리나라의 박정희 대통령 등의 파시스트 지도자들이 대규모 토목공사 사업들을 진행하고 또 깡패들을 소탕하는 이러한 패러다임을 마련한 장본인이 바로 파시스트 지도자 무솔리니가 원조였던 것이다. 이외에도 그는 '곡물 전투'라는 정책을 실시하여 무려 5,000개에 달하는 농장을 새로 만들었다.

 

일종의 우리나라로 치자면 '곡물 전투'라는 개념이 박정희 대통령의 '새마을운동'과 같은 정책이었던 것이다. 이 정책의 결과 농촌지역에 여러 마을들과 농지들이 개간되어 농작물, 특히 곡물의 생산량이 늘어나 먹고 사는 데에 지장이 없어졌다. 최근에 한 영국의 일간 가디언 기자가 이탈리아 로마의 한 카페 사장인 78살의 파스콸레 모레티라는 사람을 인터뷰 했을 때 "나는 그 시대에 태어났습니다. 무솔리니는 우리가 밥 굶지 않게 해줬죠."라는 말은 괜히 나온 것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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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크 위에 올라가서 이탈리아 군인들에게 연설을 하고 있는 무솔리니의 모습(왼쪽)과 이탈리아 로마에서 연설을 하고 있는 무솔리니의 모습(오른쪽)

 

그리고 이탈리아 서부, 그리고 로마의 동남쪽에 위치한 광대한 폰티노 습지를 개간하여 마을을 만들었다. 이 정책은 1928년부터 시작되었는데, '토지 전투'라는 정책으로 대대적인 간척사업이 실시되었다. 앞서 말한 폰티네 습지가 가장 대표적인데, 이는 늪을 새로운 거리, 새로운 도시로 바꾸는 정책이었다. 이 정책은 파시즘의 대표적인 업적의 하나로 치부되어 대대적으로 선전이 되었다. 물론, 이후 이 정책들은 폐기되고 전쟁을 하면서 다시 원상복귀가 되긴 했지만 말이다.

 

또한 근대적인 교통망을 현대적인 교통망으로 탈바꿈하는 시도도 무솔리니 때 이뤄졌다. 그리고 농민에 대한 보조금을 지급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1929년에 경제대공황이 발생하고 경제가 어려워지자 '조국의 금' 운동이라는 정책을 실시했는데, 이는 우리나라의 '금모으기 운동'의 원조라고 보면 되겠다.

 

각종 목걸이나 반지, 귀걸이와 같은 금들을 국가에 헌납하는 운동으로 이 장신구들을 기부하면 팔찌를 하나씩 주었다. 이렇게 모인 금들은 이탈리아의 은행들에 금괴로 비축했고, 국가재정을 위한 일에 쓰였다. 국가를 위해 개인의 희생도 마다하지 않는 '파시스트 정신'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라고 하겠다.

 

그리고 무솔리니는 민간기업들이었던 기업들에 대한 국유화를 추진하여 은행들과 기업들을 국유화하는 작업을 실시했으며, 외국 기업의 주식은 국가에 헌납해야만 했다. 그리고 1938년에는 물건들의 가격을 통제하는 물가 억제정책을 실시해 시민들의 삶의 질이 향상되었다. 또한 같은 파시즘 국가였던 나치 독일과만 교류를 하고 이외의 모든 국가들과는 교류를 끊어 자급자족을 지향하는 경제체제로 전환하는 민족주의적인 면모를 보였다.

 

이외에도 무솔리니는 뛰어난 파일럿이었던 발보에게 거대한 항공산업 시설을 건설하게 하였고, 그 결과 항공산업 부문에서 이탈리아가 국제사회에서 많은 상들을 휩쓸고 다녔다. 또한 베네치아의 금융업자로 유명했던 주세페 볼피는 파시스트였는데, 마르게라와 메스트레라는 지역에 산업시설을 건설하여 이탈리아의 경제를 이끌어 나갔다.

 

무솔리니가 통치하던 시대에 각종 기차나 우편, 전화 서비스가 크게 향상되었고, 항구와 철로, 수로, 도로, 학교, 경기장, 병원 및 우체국 등을 최첨단 현대식으로 건설하여 시민들의 삶의 질이 향상되었다. "무솔리니 시대에 그래도 기차는 제시간에 왔다"라는 말이 유명해질 정도로, 그리고 가장 대표적인 업적으로 손에 꼽힐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실제로 시스템공학 박사로 현재 미시간 주 오클랜드 대학 공학부 교수이자 생명공학협회 부회장으로 있는 바버라 오클리는 다음과 같은 말을 하기도 했다.

 

 

"파시스트였던 베니토 무솔리니는 기차가 제시간에 운행하게 만들고 장대한 기념건물을 건조하여 인기를 얻었다."

 

 

또한 소위 노동조합들을 견제하여 파업을 없앴으므로 경제는 계속 안정적으로 이어졌다. "5년만에 로마는 전세계인들을 놀라게 해야 한다. 로마는 아우구스투스 시절에 그랬던 바와 같이 거대하고, 질서정연하며 강력한 도시가 되어야 한다." 라는 무솔리니가 집권한 뒤인 1925년에 했던 호언장담의 말처럼 이탈리아는 실제로 거의 대부분 현대화가 되며 급격한 발전을 이룩해냈다. 국가의 '신성한 이기주의'를 위해 강권 정책을 채택할 것이라고 확실하게 밝혔던 것이다.

 

그리고 그 이전에 부패했던 부분을 개선시켰다. 특히 무솔리니는 과거 로마제국으로의 회귀를 원했기 때문에 관련 로마문화의 발굴과 보존작업에 힘을 썼는데, 카이사르 황제가 살던 시대의 유적들을 발굴하는 작업을 국가 주도로 진행시켰다. 이외에도 이탈리아인들에게 대가족을 가지게 하기 위해 노력을 했다. 이외에도 무솔리니는 당시까지만 해도 중남부 이탈리아에 특히 만연하던 말라리아 퇴치에 앞장섰으며, 로마 교황청을 독립적인 국가로 승격시켜 지금에 이르게 되었다.

 

물론, 무솔리니 시대에는 야당이 해체되고 언론도 통제되었으며, 인권이 유린당해 정치범들을 잡아들이는 독재체제를 구축했다는 건 사실이다. 또한 유럽의 발칸 반도와 북아프리카를 눈여겨 보며 이탈리아가 식민지로 삼을 나라들을 물색했으며, 실제로 침공하여 많은 사람들을 희생시켰던 것 또한 역시 사실이라 하겠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이러한 긍정적인 변화는 이탈리아를 방문한 많은 외국인들이 큰 감명을 받는 계기가 되었고, 비슷한 시기에 새로 만들어진 사상을 주창하던 국가인 소련과 비교가 되었다. 실제로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많은 사람들이 당시에 파시즘을 옹호하며 찬양했고, 이 체제를 선호했다. 소련의 볼셰비키와 서구열강의 자유주의 체제에 혐오를 느낀 많은 사람들이 파시즘 체제를 맹렬하게 지지했다. 마치 인류가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인 제3의 르네상스처럼 보였던 것이다.

 

이탈리아의 체제는 선망의 대상이 되었고, 그 이후 유럽의 절반 이상이 파시즘 체제를 택했다는 것만 봐도 무솔리니 체제에 대한 당시 유럽인들의 인식을 엿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독일 베를린자유대학교에서 고대역사학과 교수인 알렉산더 데만트가 파시스트 치하의 이탈리아, 즉 무솔리니가 통치하던 이탈리아에 대해 다음과 같은 평가를 내린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무솔리니는 국가의 '신성한 이기주의'를 위해 강권 정책을 채택할 것이라고 확실하게 밝혔다. ······ 야당은 해체되고, 언론도 통제를 받았다. 그러나 그는 한편으로는 근대화에 박차를 가하고 건설 붐을 일으켰다. 마피아도 사라졌다. 1929년에 무솔리니는 교황에게 바티칸을 이양하고 교회와 화해했다. 국내 정치를 안정시킨 그는 외교 정책에서 자신의 명예욕을 드러냈다."

 

 

현재 이탈리아는 유로존 위기로 인해 주로 남부유럽인 피그스, 즉 PIIGS에 속하는 포르투갈, 아일랜드, 그리스, 스페인과 함께 거의 쓰러지고 있는 국가로 분류되고 있다. 이탈리아로 이민을 왔던 이민자들마저 이탈리아를 떠나고 있는 상황이며, 실업자는 무수히 많고 경제 역시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탈리아의 국민들은 무솔리니와 같은 결단력이 있고 카리스마가 있는 강력한 지도자를 꿈꾸고 있고, 실제로 현재 무솔리니에 대한 향수를 통해 그에 대한 그리움이 퍼지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무솔리니는 이탈리아에서만큼은 이탈리아판 박정희 대통령으로 여겨지고 있으며, 위대한 지도자로서 숭배받고 있다.

 

 

출처:http://kin.naver.com/open100/detail.nhn?d1id=11&dirId=111002&docId=1447259&qb=67Kg64uI7YagIOustOyGlOumrOuLiCDtjIzsi5zsppjsnZgg7JWE67KE7KeA&enc=utf8&section=kin&rank=1&search_sort=0&spq=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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