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잉크에 펜으로가 아니라 피눈물에 뼈로 적은 나의 이 글, 독자여! 삼가 읽어다오

http://blog.naver.com/jlda1004/220020008643 출처





잉크에 펜으로가 아니라 피눈물에 뼈로 적은 나의 이 글, 독자여! 삼가 읽어다오
《고발》 전국 대형서점 절찬리 판매 중! 목숨을 담보로 먼저 탈북시킨 在北 작가 '반디'의 소설(332쪽, 1만2000원)

조갑제닷컴    


북녘 땅 50년을
말하는 기계로,
멍에 쓴 인간으로 살며

재능이 아니라
의분(義憤)으로,
잉크에 펜으로가 아니라
피눈물에 뼈로 적은
나의 이 글

사막처럼 메마르고
초원(草原)처럼 거칠어도
병인(病人)처럼 초라하고
석기(石器)처럼 미숙해도
독자여!
삼가 읽어 다오




在北 작가 반디의 북한 체제 비판 소설 《고발》
대형 온·오프라인 서점에서 절찬리에 판매중!

교보문고 광화문점 (진열위치 J11-5 / J11-6)




영풍문고 종로점 (진열위치 A1-2 )




고 발

반디 著

332쪽 | 130*198mm | 12,000원 | 2014년 5월10일 | 979-11-85701-02-8 03810
소설>한국소설>한국소설일반







趙甲濟의 讀後記


반디의 '고발'을 세 번 읽었다. 조지 오웰의 '1984'처럼 읽는 데 힘이 드는 소설이었다. 어둡고 억눌린 북한 사람들의 삶이 문학적으로 전달되니 기사문보다 실감이 더했다. 이 책은 '1984'와 짝을 이룬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웰은 1949년에 '빅 브라더(大兄)'가 다스리는 미래의 전체주의 국가를 상상하여 '1984'를 썼다. 반디의 '고발'은 상상의 '1984'가 현실의 삶으로 구현된 북한을 그린다. '1984'의 '大兄'은 자애로운 '어버이 수령님'으로 등장하였다. 
 반디가 오웰과 다른 점은,  '고발'을, 목숨 걸고 썼고 목숨 걸고 한국으로 내 보냈다는 점이다. 이 소설의 가장 큰 의미는, 지옥 같은 삶 속에서도 꺾이지 않은 비판정신의 소유자가, 목숨을 건 '글쓰기'를 했다는 점이다. 반디가 이 소설로 체포된다면 잔인한 방법으로 처형될 가능성이 높다. 독자들은, 반디가 그런 위험을 각오하고 글을 쓴 동기는 분노였음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별도로 詩 모음을 보냈는데 '머리글을 대신하여'라는 제목으로 이렇게 썼다.

 저 유럽의
 옛 털보는 주장하기를 
 자본주의는 암흑천지요
 공산주의는 광명천지라 하였거늘

 암흑천지에서만 빛날 운명인
 광명천지의 나 반디는
 만 천하에 고발하노라
 그 암흑이 그믐밤이라면
 천만길 먹물속인
 털보의 그 광명천지를

 '털보 마르크스가 지구상에서 만들겠다는 계급 없는 광명천지의 사기성'을 폭로하겠다는 게 반디의 글쓰기 목적이다.

 탈북에서 혁명으로 진화하는 구도

 반디는 일곱 편의 단편을 '탈북기'에서 시작, '빨간 버섯'으로 끝나도록 배열했다. 일곱 편으로 압축된 북한인의 삶이다. 탈북이란 소극적 저항에서 독재타도의 외침으로 발전하도록 순서를 매긴 것 같다. 이는 의도적이다. 공산당이 하듯이 반디도 문학을 선동의 도구로 보는 모양이다. 그의 경우엔 진실의 선동일 것이다. 
 '유령의 도시'에선, 아기가 마르크스와 김일성의 초상화를 보고 경기를 일으키는 것을 막아 보려고 덧커튼을 달았다가 평양에서 추방당하는 엄마가 주인공이다. '준마의 일생'은 공산체제가 시키는대로 성실하게 살아가다가 좌절, 아끼던 느티나무를 찍어버리고 죽는 馬夫의 이야기이다. '지척만리'는 죽어가는 어머니를 지척에 두고도 여행 제한과 기차 운행의 결함으로 결국은 임종을 하지 못하는 아들의 안타까운 사연이다. '복마전'은 길을 가다가 김일성을 만나 선전자료로 이용당하는 할머니가 주인공이고, '무대'는 보위부원의 눈에 비친, 북한 체제의 연극성이 主題이다. 마지막 단편인 '빨간 버섯'에서 필자 반디는 비로소 본색을 드러내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산실인 黨舍(당사)를 타도하자고 외친다.  

 계급투쟁론 비판

 반디의 단편집에는 북한사회를 규율하는 '계급 차별'의 무서운 실상이 배경 음악처럼 깔려 있다. ‘탈북기’의 한 주인공인 아내는 남편의 출신성분이 ‘적대군중’임을 확인한 뒤 일기에 이렇게 썼다. 
 <149호! 그것은 참으로 무서운 말이었다. 도장도 그저 도장이 아니라 목장에서 가축들의 잔등에 지워지지 않게 불에 달구어 찍어대는 쇠도장이었다. 옛날엔 노예들에게도 찍었다던 그런 무서운 철인(鐵印)이 지금 민혁 아버지와 그의 삼촌은 물론, 민혁의 여린 잔등에까지 깊숙이 찍혀져 있는 것이었다.> 
 ‘계급적 敵’이란 저주가 아들 민혁에 이어 태중(胎中)의 아이에게 대물림되는 것을 피하려고 아내는 유산을 결심하고 이를 안 남편은 탈북(脫北)을 결단한다. 
 이 단편 소설집을 관통하는 것은 계급투쟁론 비판이다. 계급해방을 위한 계급투쟁론이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낳고 그것이 인류 역사상 가장 완벽한 우상숭배와 계급차별의 생지옥을 북녘 땅에 만든 것이다. 이 일곱 단편의 주인공들은 “수령은 하늘, 우리는 벌레”(반디의 詩)로 살아가면서 스러져간다. 
 ‘유령의 도시’에서 ‘유령’은 ‘공산당선언’에서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배회한다. 공산주의라는 유령이>라고 썼던 계급투쟁론의 창시자 마르크스를 가리킨다. 한경희가 살고 있는 평양의 아파트 창문 너머로는 武力部 청사 측벽에 붙은 마르크스 초상화가 보인다. 우는 젖먹이 아들을 안고 창가로 가 초상화를 보이면서 “어비, 어비”라고 겁을 주었더니 기겁을 했다. 그 뒤로는 털보 초상화만 보면 경기를 일으킨다. 한경희는 덧커튼을 쳐 아기 눈에 ‘어비’가 비치는 것을 막으려 했다가 가두(街頭) 당비서에게 지적을 당한다. 외국인이 많이 오는 행사를 앞두고 커튼을 통일하라고 했는데, 왜 커튼을 다른 집과 다르게 튀어나오게 쳤는가, 이게 문제가 된다. 
 가두 비서는 경고한다. 
 “이것은 단순한 커튼 문제가 아니라 당의 유일사상 체계와 관련되는 문제”라는 것이다. 문제의 심각성을 알게 된 남편은 손을 들어 초상화를 가리키며, “저기 저 마르크스가 내어놓은 모든 이론 중에서 가장 위대한 이론이 뭔지 아오?”라고 묻는다. 아내가 퉁 하고 있으니 정색을 하고 말한다. 이게 반디가 이 단편집을 통하여 누누이 강조하고 싶어하는 메시지이다.   
 “그건 자본론도, 과학적 공산주의 건설이론도 아닌 바로 프롤레타리아 독재이론이요. 프롤레타리아 독재! 그게 어떤 것인지를 알기에 이 도시 사람들은 누구나가 ‘토영삼굴(兎營三窟)’을 따르며 살고 있는 거요.”
 ‘토영삼굴’은 토끼가 자신의 안전을 위하여 세 개의 굴을 파고 산다는 뜻이다. ‘유령의 도시’에 나오는 압권(壓卷)은 폭풍우가 몰아치는 날 평양에서 열린 100만 군중대회 장면이다. 
 <금방 한경희의 눈앞에서 이루어진 일은 경탄을 불러일으키는 기적이기 전에 전율을 자아내는 무서움이었던 것이다. 죽음의 계단을 넘는 일이라 해도 그렇게는 움직이지 못하리라! 불과 45분 안에 도시에 널려 있던 100만의 군중이 광장에 모여들다니! 그 어떠한 무서운 힘이 이 도시로 하여금 이런 불가사의한 사변을 낳게 하고 있는 것일까? 한경희가 얼마간이나마 그 대답을 찾게 된 것은 그로부터 꼭 보름이 지난 뒤였다.>

 두 붉은 유령

 북한 전역에선 '행사 총화'가 진행된다. 행사 준비에 충성심을 충분히 보여주지 못한 이들을 처벌하는 査問會(사문회)다. 한경희 집안은 여기에 걸려 평양에서 추방된다. '편결'의 내용은 <자녀 교양을 잘못하여 행사에 해를 주었을 뿐 아니라 공산주의 시조인 마르크스의 초상화를 비속화하고, 수령님의 초상화를 솥뚜껑에 비기는 등> 운운이었다. 
 반디는 추방 트럭에 태워진 한경희의 눈을 통하여, 광장의 두 초상화 마르크스와 김일성을, '두 붉은 유령'이라고 묘사한다. '털 속에 묻힌 마르크스와 매섭게 입을 다문 김일성'은 한경희에게 이렇게 호령하고 있었다. 
 '나가라면 찍소리 말구 나갈 거지 무슨 허튼 생각이야. 이게 내 도시지 네 도신 줄 아니?'
 평양은 사람의 도시가 아니라 계급투쟁론을 퍼뜨린 유령과 이를 실천한 또 다른 유령의 도시인 것이다. 
 한경희는 평양을 떠나는 트럭세서 비로소 100만 군중을 45분 안에 한 자리에 모은 힘의 비밀을 알게 된다. 남편이 또 '저기 저 마르크스의 모든 이론 중에서 가장 '위대한 이론'이 뭔지 아오?'라고 물어준다면 더욱 학술적으로, 더욱 진지하고도 뼈저리게 대답을 해줄 것이었다.

 무대自感

 ‘무대’는 제목대로 북한사람들이 살아남기 위하여 연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연극의 본질을 보여준다. ‘무대자감’이란 생소한 단어가 등장한다. 북한에서 나온 ‘조선말 대사전’을 찾아보았다. 
 <자감(自感): 배우가 인물의 사상감정과 주어진 정황을 그대로 믿고 느낌으로써 役인물의 생활 속에 스스로 깊이 잠기는 것, 또는 그러한 창조적 상태.>
 북한인들의 ‘무대자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학살자인 김일성을 자애로운 ‘어버이 수령’ 役으로 설정한 연극 무대에서는 자신의 역할을 ‘연기’하는 게 아니라 ‘實演’해야 한다는 점이다. 연극만으로는 부족하다. 役과 일체를 이뤄야 한다. 연극의 생활화를 넘어서 내면화 단계로까지 가야 한다. 이런 自感이 되려면 김일성을 정말로 사랑해야 한다. 
 ‘무대’의 주인공은 연합기업소에 주재하는 보위부원 홍영표이다. 그는 반항기가 있는 아들(경훈) 때문에 속이 상해 있다. 아들이 하필이면 반동 집안의 딸인 숙이를 사랑한다. 숙이의 아버지는 정치범 수용소에 가 있다. 때는 1994년 7월 김일성이 죽은 직후이다. 북한 주민들은 곳곳에 설치된 弔意場(조의장)에 매일 몰려가서 통곡한다. 홍영표는 기업소의 조의장에 몰린 조문객들 사이로 들어가 누가 진심으로 조의를 표하는지를 조사한다. 
 <막상 단위에 꽃송이를 놓고 “어버이 수령님!”하며 묵도를 시작하는 큰 숙이 어머니와 마주 하는 순간 홍영표는 불시에 등이 으쓸해졌다. 정말 그녀의 두 볼에서 눈물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정녕 그것이야말로 홍영표가 지금껏 생각해본 일도 없었고, 설사 생각해 보았댔자 믿을 수도 없었을 몸서리나는 광경이었다.>
 홍영표는 남편이 정치범 수용소에 끌려 갔으니 숙이 어머니는 형식적으로 조의를 표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숙이 어머니는 ‘무대자감’에 충실하고 있었던 것이다. 
 <가령 큰 숙이 어미 같은 사람도 ‘어버이 수령님!’하는 슬픈 소리나 꺼이꺼이 대는 울음소리는 지어낼 수가 있다고 하자. 그러나 눈물까지야 어떻게 나올 수가 있는가 말이다.>
 이어지는 아들과의 想像(상상) 대화가 이 단편집의 名장면이고 북한체제의 본질을 드러낸다. 
 “그게 바로 무대자감이라는 거란 말입니다.”
 “그래. 그 자감이라는 거면 큰 숙이 에미가 눈물까지도 흘릴 수가 있지. 허나 그건 배우들에게만 있는 거야.”
 “그럼 그가 배우라는 걸 아직도 모른단 말이요? 그 여자도 자감 연습극 <아프다 하하하>, <간지럽다 엉엉>의 45년생이라는 걸 아직두 모르는가 말이오. 당신이 가지고 있는 그 매서운 눈들과 귀들과 주먹들로 그에게 45년간이나 직접 훈련을 시켜오고도 모른다니 말이 됩니까?”
 홍영표는 이 끔직한 ‘수령극’에서 감시자 역할을 해온 자신이 그 구미호 같은 숙이 어머니를 만들어낸 장본인이었음을 비로소 깨닫는다. 자감 연극은 성공했지만 홍영표는 인간으로서 살아갈 의욕을 잃는다. 아니 의미를 잃는다. 
 <한방의 권총 소리가 7월의 밤대(밤대기, 밤공기)를 찢었다. 자감극의 사나운 감독이자 그 역시 그 극의 일개 명배우였던 홍영표는 동업자들보다 한 발짝 앞서 자기 연극무대의 막을 내렸던 것이다.>
 체제유지의 첨병이었던 보위원의 자살은 체제의 자살을 상징한다.

 '아프다 하하하'

 일곱 편의 단편에 연극이 소재로 자주 나오는 것은 북한 체제의 중요한 작동 원리가 연극이기 때문이다. 어버이 수령님과 인민은 지상 최대의 연극을 연기하듯이 살아간다. 평양은 그 중심 무대이다. 종국엔 연기와 삶이 일체화된다. ‘무대자감’인 것이다. 
 연극 중에서도 가장 잔인한 연극은 <아프다 하하하>, <간지럽다 엉엉>이다. 아파도 웃어야 하고, 간지러워도  울어야 한다. 보통 독재자는 公的 생활을 통제한다. 전체주의 독재자는 인간의 私생활까지 통제한다. 김일성 같은 ‘自感 독재자’는 인간의 감정까지 통제한다. 전체주의 독재보다 더 심한 것이 이런 감성독재이다. 반디는 김일성이야말로 스탈린과 히틀러를 능가한 최악의 감성 독재자였음을 고발한다. 
 ‘복마전’은 길을 가다가 우연히 김일성을 만난 할머니가 수령님의 자애로움을 선전하는 자료로 이용되는 과정을 소재로 삼았다. 할머니가 김일성이 내어준 자동차를 타고 歸家하는 사이에 영감(남편)과 손녀는 기차역에서 기다리다가 몰린 승객들 사이에서 압사당할 뻔한다. 두 사람은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실려와 집에 누워 있는데 라디오와 텔레비전에선 연일 수령의 미담 선전 방송이 계속된다. 할머니는 자신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선전방송에 시달린다. 영감한테 미안하기도 하고 화도 난다. 
<양쪽 손톱을 동시에 뽑히는 듯한 고통을 당한 오 씨를 선창자로 하는 ‘행복의 웃음’ 소리! 세상에 이런 일도 있을 수 있을까? 그 어떤 잔학한 마술의 힘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뭇사람들의 고통의 울부짖음을 ‘행복의 웃음’으로 둔갑시킬 수가 있단 말인가.>
 반디는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이 오늘까지 바로 그 마귀의 마술 속에서 진실과는 판이한, 완전히 전도된 삶을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라고 적었다. 아파도 “하하하”라고 웃을 수밖에 없는 북한은 늘 '웃음꽃이 피는 지옥'이다. 아파도 웃어야 하는 拷問(고문)이야말로 가장 견디기 어려울 것이다. ‘복마전’은 맞아도 “아프다”고 할 자유가 말살된 체제의 정곡을 찌른 寓話(우화) 같은 작품이다. 
 
 최고의 문학적 선동

 반디는 일곱 편의 단편 중 마지막에 ‘빨간 버섯’을 배치하였다. '고발'의 결론이고, 鮮血(선혈)한 문학적 선동이다. 
 주인공 고인식은 성실하기 짝이 없는 醬(장)공장 기사장이다. 한 도시의 된장 공급을 위하여 열심히 일했지만 그 성실성이 오히려 질투를 불러 공개 재판에 붙여진다. 市黨에선 된장 배급이 중단된 책임을 고인식에게 씌워 인민들의 불만을 해소하려 하는 것이다. 
 군중들을 모아놓고 하는 공개재판에서 재판소장이 묻는다. 
 “피고 고인식은 기소된 죄과들을 인정하는가?”
 고인식은 군중들의 머리 너머 시내 중심가 쪽을 멍청히 응시한 채 백치와도 같이 시물시물 입술을 움직이고 있었다. 빨간 버섯을 닮은 市黨 청사를 보면서 <족쇄 찬 두 손으로 무엇을 하나하나 비틀어 뽑듯 하며 ‘요거, 요거!’하고 중얼거리는 소리를 (그를 취재하였던) 허윤모 기자는 똑똑히 들을 수가 있었다.>
 고인식은 외치듯 중얼거린다. 
 “저기···. 저기에 아직두 있구나! 여보시오. 그 빨간 버섯을 뽑아버리고 가시오. 무서운 겁니다. 그게! 여보시오···”
 고인식의 ‘빨간 버섯’을 알 사람은 고인식이 북한노동당에 의하여 이용당하고 쓰레기처럼 버려지는 과정을 지켜본 허윤모와 직장 동료들뿐이다. 고지식하던 고인식의 영혼이 이제야 불타 오른 것이다. 
 <고인식의 백설 같던 넋은 이제야 이 땅에 뿌리박힌 독버섯을 알아보고 독재와 회유와 기만과 억압으로 얼룩진 그것을 뽑아보려 필사의 힘을 다하고 있는 것이었다.>

 '저 독버섯을 뽑아버려라'

 고인식을 동정해온 허윤모 기자도 ‘빨간 버섯을 뽑아 버리고 가시오’라는 말에 感化된다. 그에게 고인식은 ‘자기의 전부를 바쳤던 것으로 인해 자기의 전부를 잃은 사람’이다. 그도 고인식의 희생에 분노한 눈으로 시당 청사 ‘빨간 버섯’을 直視한다. 
 <얼마나 많은 귀중한 생명들이 저 毒素(독소)에 희생되고 있는 것인가! 과연 그 사자머리의 마도로스 파이프가 지껄였다던 구라파의 붉은 유령이 이 땅에 뿌린 것이, 인간의 모든 불행과 고통의 禍根인 저 빨간 버섯의 씨앗 따위였단 말인가!>
 으스러지게 주먹을 들어 쥐고 ‘벽돌집’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는 허윤모의 가슴 속에서는 고인식이 미처 외치지 못한 절규가 처절하게 울려오고 있었다.
 “저 빨간 버섯, 저 독버섯을 뽑아버려라. 이 땅에서 아니, 지구 위에서 영영!”
 적어도 반디의 상상 속에선 프롤레타리아 독재 타도의 혁명이 시작되었다. 허윤모 기자는 반디 자신을 모델로 한 지식인일 것이다. 일곱 편의 단편 속에서 북한정권과 맞서기로 결심하는 이는 고인식과 허윤모 두 사람이다. 반디는 책의 마지막 문장을, 마르크스라는 유령을 향하여 쏘았다. 
 “저 빨간 버섯, 저 독버섯을 뽑아버려라. 이 땅에서 아니, 지구 위에서 영영!”이란 부르짖음은 공산당 선언의 마지막 문장, “세계의 노동자들이여, 단결하라!”에 대응한다. 이 소설이 북한에서 읽혀진다면 마지막 구절이 북한 사람들의 가슴 속에서 큰 파문을 일으킬 것이다. 이 책은 南에서는 물론이고 北에서 읽혀져야 할 소설이다.

 두 방향의 고발

 반디가 이 글을 남한으로 내 보내면서 쓴 일종의 序詩는 이렇다.

 북녘 땅 50년을 
 말하는 기계로, 
 멍에 쓴 인간으로 살며

 재능이 아니라 
 의분(義憤)으로, 
 잉크에 펜으로가 아니라
 피눈물에 뼈로 적은
 나의 이 글
 
 사막처럼 메마르고 
 초원(草原)처럼 거칠어도
 병인(病人)처럼 초라하고
 석기(石器)처럼 미숙해도 
 독자여!
 삼가 읽어다오

 단편집을 다 읽고 나면 '피눈물에 뼈로 적은' 글이란 실감이 온다. 문학적 재능이 아니고 분노로 쓴 글이라고 했지만 문학적 자질과 작품의 완성도는 상당한 수준이다. 다 읽고 나니 여러 주인공들이 紙面을 벗어나 내 가슴 속에 살아 있는 모습으로 옮겨왔다. 북한의 삶이 전체적으로 이해되었다. 대중 소설에 흔한 지나친 작위성도 없다. 名作처럼 자연스럽다. 무엇보다도 살아 있는 한국어를 썼다. 한글專用으로 암호화된 한국어를 구사하는 문학이 과연 존재할 수 있을까 늘 의문이었는데, 반디는 土俗 한국어로 눈에 선한 光景과 心境을 그렸다. 한자의 장점은 고급 언어에 필수적인 개념성과 관념성인데, 한글로만 표기할 수 있는 토속 한국어의 장점은 자연 현상을 표현하는 生動하는 맛이다. 
 인류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북녘 상황에 분노하는 문학인들이 적었다는 점, 소설과 詩의 소재로 여기지 않을 정도로 무관심하였다는 점은, 한국 知性史의 가장 큰 오점일 것이다. 서구 지식인의 가장 큰 타락이 스탈린의 대학살을 비호한 것이었듯이 한국 지식인의 가장 큰 타락은 김일성을 비호하고 주체사상을 비판하지 못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반디의 '고발'은 '붉은 魔王'의 잔인한 압박을 이겨낸 인간승리이자 문학의 존재증명이며, 북한체제뿐 아니라 남한 지식인에 대한 고발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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